칼럼 <강창일의 찾아가는 한국 영화>-몽펠리에, ‘한국 영화의 만남’ 1955년 작 <미망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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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5-11-18 02:46 조회 33 댓글 0본문
-박남옥 감독의 1955년 작 « 미망인 » 상영
-마지막에 소리도, 엔딩도 없는 이 영화에 대한 현지 관객들의 반응은?

영화 상영 후, 몽펠리에 구시가 박물관(Musée du Vieux Montpellier)에서 열린 특별 토론에서 강창일 작가이자 변사 ©️Philippe Vu
« 한국 영화의 만남 »이란 행사는 아름다운 지중해의 도시 몽펠리에를 중심으로 프랑스 남부 도시를 순회하고 있다. 툴루즈에서의 한국 영화 행사를 마치고 기차로 몽펠리에로 향했다. 기차의 창밖으로는 랑그도크의 황금빛 포도밭이 끝없이 이어졌고 붉은 지붕을 이고 있는 오래된 마을들이 언덕 위에서 스쳐 지나갔다. 나르본을 지나 바다가 가까워지자 모든 것이 극적으로 변했다. 드넓은 석호와 습지가 펼쳐지더니, 하늘과 땅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드는 얕은 물 위로 분홍빛 홍학 무리가 모습을 드러낸다. 지중해 야생의 생동감이 한데 섞인 그 우아하고 경이로운 장면을 바라보다가 보니 목적지인 몽펠리에다.
올해 몽펠리에 시민들이 만날 영화는 한국 최초의 여성 감독이라는 왕관을 차지한 박남옥 감독의 1955년작 영화 «미망인».
상영 전 간단한 영화 소개를 위하여 한불 예술 교류 협회(KFAC, Korean French Art Connection)의 스탭진과 예술영화 상영관 르 디아고날(Le Diagonal Cinéma d'Art & d'Essai à Montpellier)에 도착했다. 파리 골목골목에 위치한 예술영화 상영관을 방문하는 것도 즐거운 일이지만 프랑스의 지방 도시 상영관을 방문하는 것은 커다란 감동을 준다.
할머니 할아버지와 그들의 손을 잡고 상영관을 찾아온 손녀 손자들의 모습을 바라보자면 1950년대부터 이어져온 프랑스인들의 영화 사랑 , 각 지역 시네필들의 즐거움과 자긍심 그리고 단단한 연대감을 확인할 수 있다.
마지막에 소리도, 엔딩도 없는 1955년 작 한국 영화, <미망인>
몽펠리에는 규모가 큰 도시여서 상영관의 규모가 작은 사이즈가 아니다. 보통 50석으로 이루어진 단관 형태의 예술영화 상영관 들과는 다르게 4개의 상영실로 이루어진 이 곳의 좌석수는 무려 893석.

몽펠리에 시민들이 몰려오고 한국영화의 만남 행사를 기획한 남영호 예술감독의 인삿말에 이어 나는 상영될 영화에 대해 간단히 설명했다. 이 영화의 경우 상영시간을 고려하면 12개의 롤, 즉 12 개의 필름 두루마기가 캔에 담겨 있어야 하는데 이 영화 발굴 당시 11번 째 캔 속의 필름은 사운드 작업이 되지 않은 상태였고 영화의 마지막 부분인 12번째 캔은 이미 사라진 상태였다. 웅성웅성하는 관객들의 소리가 들려왔고 영화가 시작됐다. 내가 경고한 것처럼 영화의 뒷 부분에는 상당 시간 소리가 없다. 그런데 관객들은 아무런 불평없이 영화에 집중한다. 마침내 엔딩 부분이 없이 영화가 끝나고 불이 들어오자 관객들이 웅성대기 시작한다.
영화 상영 후 특별 토론 시간
영화 상영 후에 마련된 특별 토론 시간. 상영관을 나와 광장을 횡단하여 도착한 장소는 중세 시대 건축물을 18세기 양식으로 개조한 몽펠리에 구시가 박물관(Musée du Vieux Montpellier). 이곳은 몽펠리에의 문화유산을 대표하는 장소이다. 하나 둘, 조금 전 상영관에서 본 관객들이 걸어 20분 정도 거리의 이곳까지 몰려들기 시작했다. 토론회는 영화의 제작 배경과 당시 한반도의 역사에 관하여 몽펠리에의 영화 평론가 베아트리스와 대담 형식으로 그녀가 묻고 내가 답하는 순서로 진행되었다. 그리고 드디어 영화의 엔딩에 대한 관객들과의 뜨거운 논쟁이 시작되었다. 나는 어떻게 엔딩이 끝났을 것 같느냐 물었다. 서로 먼저 손을 들어 자신만의 엔딩을 추측 혹은 창조하는 주장과 제안의 불붙는 하이라이트 시간이 지난 뒤 내가 다시 물었다.
-여러분, 오늘날 기술의 발달로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 소리를 입히는 작업은 매우 간단합니다. 게다가 사라진 엔딩은 당시의 자료를 모아 AI로 만들어 넣을 수도 있어요. 여러분, 이러한 작업에 찬성하시나요?
갑자기 관객들이 조용해졌다. 그리고 잠시 뒤 웅성웅성 소리가 들려왔다.
-찬성하시는 분 손을 들어 주세요.
몽펠리에의 시네필들은 서로를 쳐다보며 고개를 좌우로 젓기 시작했다. 한 여성이 소리쳤다.
-이 영화는 문화유산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발굴 당시의 상태로 보전할 의무가 있어요.
모두가 동의하며 머리를 위아래로 끄덕이는데 누군가 박수를 치기 시작했고 이 웅장한 몽펠리에의 문화유산 건물 대강당은 박수소리로 가득 채워졌다. 2025년 10월 20일, 몽펠리에 시네필들에 의해 한국영화 « 미망인»은 문화유산이 되었다.
<강창일>

파리 8대학 연극영화 박사, 파리 10대학 비교문학 연구자, 무성영화 변사. 프랑스 방방곡 곡을 누비며 강연회와 상영회를 통하여 한국영화를 알리고 있다. 저서로는 « Les Débuts du Cinéma en Corée »(Ocrée Editions, 2021), « Le Cinéma Coréen Contemporain : A l'Aube de Parasite »(Ocrée Editions, 2023)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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