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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김영필 교수의 세상 읽기] -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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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5-11-18 02:12 조회 3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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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녹슨 자전거를 전시(?)해 놓은 이곳을 하루에도 여러 번 지나쳐 다닌다. 굳이 이 집 주인에게 왜 이렇게 해두었는지 물어보지는 않았다. 하지만 나름의 이유는 있을 듯하다. 여러 개의 자물쇠를 몸에 칭칭 감고 힘겹게 매달려 있는 녹슨 자전거이다. 자전거를 매고 있는 나무 역시 늙은 나무이다. 힘없어 보이는 나무 위에 간신히 매달려 있다. 그 모습이 마치 우리의 삶을 조용히 이야기하는 듯하다. 세월의 흐름을 감당하지 못하고 하루하루 녹슬어 가는 자전거의 모습이 나이가 들면서 점차 쇠약해져 가는 나의 모습과 중첩된다. 다만 자전거와 같은 물체가 녹슬어 가는 모습을 인간이 나이가 들어가는 모습과 같은 맥락에서 얘기하는 것은 너무 가혹하고 슬플 뿐이다. 


자전거는 녹슬어 가지만 (rusting), 인간은 나이가 들어간다(aging). 인간이 나이가 들어가는 것이 단순히 물리적 변화만은 아니다. 물리적으로 쇠약해지긴 하지만, 정신적으로는 더욱 성숙해져 가는 것이다. 나이가 들어가는 것은 더욱 지혜로워지는 과정이고, 세상을 좀 더 높은 곳에서 내려다 볼 수 있는 역량을 갖추어 가는 과정이다. 그러니까 항노화(anti-aging), 역노화(de-aging)이 아니라 잘 늙어가는(well-aging) 것이다. 나이가 들어가지 않는 것이 아니라, 나이가 잘 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이 녹슨 자전거는 인간에게 죽음이 무엇인지를 성찰하게 해주는 메타포(은유)이다. 


나이가 들어가는 것에 대한 철학적 성찰이 왜 필요한가? 죽음에 대한 성찰이 없는 삶은 무의미한 삶이다. 잘 죽기 위한 연습을 하는 것이 철학이라는 소크라테스의 말이 이해될 듯하다. 잘 살지 않고서는 잘 죽을 수 없다. 인간에게 삶과 죽음은 별개 사건이 아니다. 마치 동전의 앞뒷면처럼 삶이 죽음이고 죽음이 삶이다. 살아 있으면서 하루하루 죽어간다. 하루하루 죽음으로 다가가는 것이 아니라 죽음이 우리의 삶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미래가 아닌 도래(到來)이다. 


내가 철학과에 막 입학했을 때, 신입생 환영회에서 교수님이 말한 ‘매일 죽어라!’는 말은 마치 화두처럼 들렸다. 매일 죽는 삶을 살라고 충고해 주신다. 이상한 말이 아닌가? 죽으면 살 수 없고, 살아 있는 이상 죽을 수 없는데. 어떻게 죽는 삶을 살 수 있는가? 죽음과 사망은 다르다. 살아 있는 동안 사망할 수는 없다. 하지만 죽음은 사망과 다르다. 사망은 동공이 열리고 호흡이 정지되는 물리적 사건이다. 하지만 죽음은 삶과 양립할 수 있다. 우리는 죽음을 미래의 사건으 로 앞서 경험할 수 있다. 철학자 하이데거(M. Heidegger)는 이것을 죽음으로 미리 달려감(Vor-laufen)이라 한다. 불안은 아직은 오지 않았지만, 언젠가는 도래할 죽음에 대한 불안이다. 인간만이 불안을 느끼는 존재이다. 동물은 공포는 느끼지만, 아직 다가오지 않은 죽음 때문에 불안해하지는 않는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항상 죽음을 기억하라는 수행자의 격언은 하루하루 참된 삶을 살라는 메시지이다.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 죽음은 하데스가 관 장하는 지하 세계로 내려가는 것이다. 스틱스 강을 건너 하데스로 이른다. 강을 건너기 위해 뱃사공 카론에게 뇌물을 주어야 한다. 강을 건너면 지하 세계의 문지기 개인 케르 베로스에게도 뇌물을 주어야 들어갈 수 있 다. 이렇게 죽음의 세계로 들어가는 과정은 힘들다. 힘들어서 가기 싫은 곳이다. 죽음이 쉬운 사람은 없다. 위대한 아킬레우스마저 지하 세계에 이르러, 노예가 되더라도 지상의 삶을 택하겠다고 고백한다. 이처럼 신화에서는 죽음을 지하로 내려가 는 어두운 것으로 규정한다. 하지만 고대 철학에서 죽음은 이데아의 세계인 영원한 세계로 초월하는 것이다. 죽음은 현실에서 영원한 세계로 이사가는 것이다. 보다 나은 세계로의 상승이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제자들에게 철학은 잘 죽는 연습하는 학문이라고 가르쳤다. 잘 죽는 것은 잘 사는 것이라고. 


<김영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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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대학교 교수와 대구 교육대학교 연구교수 역임. 철학박사(전공 서양철학 중 현상학). 저서로는 ‘여행, 인문에 담다(2020)’ , ‘욕망으로 성찰한 조선의 공간(2021: 한국출판문화진흥원 우수출판콘텐츠 선정작)’, ‘신천에 철학 카페를 짓다(2023)’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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