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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파리에 살아야 할 몇 가지 이유 Ep.36 <무화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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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5-10-28 06:44 조회 1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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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ES – Léa Maupetit

 

짙은 보랏빛의 농익은 무화과를 보니 곧 가을도 저물고 차가운 계절이 올 것 같다. 이맘때 무화과는 과피가 얇아지고 당도가 깊어진다. 이제 아쉬움은 더욱 커질 것이다. 두 달 남짓 매대를 채웠다가 금세 사라져 버리는 무화과는 언제 보아도 신비롭다. 고대 중국인들은 '꽃을 피우지 않고 맺은 열매'라며 무화과(無花果)라 이름 붙였고,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의 식물학자들은 그것을 과일이 아닌, 수천 개의 작은 암꽃과 수꽃이 뒤집힌 채 모여 있는 꽃자루로 정의했다. 꽃을 감춘 열매이든, 안에서 피어난 꽃이든 어느 쪽 이야기도 매혹적이다. 그러나 무화과의 속살에는 그보다 더 깊고 놀라운 맛과 향이 숨어 있다. 이 시기의 파리는 무화과의 화려한 단면을 이용한 디저트와, 굽거나 졸여 소스로 만든 가을 요리들이 있어 매력을 더한다. 와인에 곁들일 단출한 치즈 플레이트 위에도 조각낸 무화과 몇 개가 올라가면 맛도 분위기도 한층 풍성해진다. 하지만 무화과를 무슨 노동자의 과일쯤으로 치부하는 남부 친구들이 툭 내어주는 로제 와인 한 병과 두세 겹으로 쌓아 올린 무화과 접시로 벌였던 소박한 사치가 문득 그리워진다.

 

한국에서 온 내게 무화과는 가장 이국적이면서도 친숙한 경험이었다. 나는 성인이 될 때까지, 아니 프랑스에 오기 전까지는 신선한 무화과를 한 번도 먹어보지 못했다. 가죽처럼 딱딱하고 질겨 보이는 말린 무화과를 본 적은 있었지만 그저 노인들의 독특한 취향으로 여겼다. 어머니는 평생 한국에서 사셨지만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과일로 늘 무화과를 꼽으셨다. 성경에 무화과가 자주 등장하니 신학을 오랫동안 공부한 어머니가 자신의 이상이나 환상을 담아 표현하신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남부의 시골에서 자란 어머니가 그리워한 것은, 살림으로 마당이나 밭에서 길러진 무화과나무 한 두 그루에서 난 신선한 열매와 그 유년시절의 기억이었다는 걸 나중에서야 알았다. 무화과 열매가 자라는 신비로운 과정을 곁에서 지켜봤다면 그 기억이 쉽게 잊히지 않았으리라 생각했다. 9년 전 프랑스로 처음 이사했을 때 노천 시장을 구경하다가 보라색의 눈물방울 모양의 과일 옆에 적힌 이름을 보고 놀랐다. 과육이 부드러워 망가지지 않게 얇은 종이 껍질에 한 알씩 정성스럽게 쌓인 무화과 몇 알을 사서 먹어 보았다. 그날 이후 무화과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먹거리가 되었다.

 

솔직히 말해서 김치찌개보다 뵈프 부르기뇽이 더 좋아질 수는 없어도 무화과만큼은 정말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 되었다. 프랑스에 온 이후 사랑해 본 적 없는 것을 사랑하는 일이 얼마나 쉬운지, 또 얼마나 쉽게 다시 사랑하지 않을 수 있는지 알아야만 했다. 그러나 무화과에 대해서만큼은 그 마음이 변하지 않았다. 10월에 태어난 나는 거의 무화과와 무화과나무에 나를 설명해 줄 기억이나 상징이 담겨있다고 믿어왔다. 그래서 이 시기에 나와 같은 디아스포라와 식탁에 둘러앉을 일이 생기면, 무화과를 한 움큼 싸들고 가서 프루스트 소설에 나올 법한 무화과 이야기를 한다. 혹 우리 삶은 꽃 피우기를 건너뛰고도 열매를 맺는 것은 아닌지, 혹 시퍼렇게 멍든 것 같은 우리 삶의 속살이 실은 꽃술로 빼곡히 아름다운 건 아닌지. 결국 삶에서 좋은 것이라곤 비유 밖에 없지 않은가 속으로 생각하면서. 우리 인생이 이렇게 바뀌다니. 과거에 사로잡힌 나는 짧아도 매년 돌아오는 무화과 철에 큰 위안을 얻는다. 끝물의 무화과를 베어 문다. 삶의 실망스러운 순간들을 으스러뜨릴 만큼 달콤한 한입을.


<윤영섭 0718sam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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