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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책 소개] 마리 루이즈 나이싱의 『카메라 들고 파리지엔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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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5-09-30 02:24 조회 6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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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지엔(Parisienne)이라는 단어에는 ‘파리 토박이’, ‘파리에 사는 여성’이라는 사전적인 뜻이 있지만(같은 뜻의 남성 명사는 ‘파리지앵 Parisien’이다), 우리는 대체로 뭔가 우아하고 세련된 어떤 것을 이 단어 속에서 느낀다. 일견 ‘프렌치 시크’라는 말이 주는 느낌과 겹치기도 한다. 멋 내지 않아도 멋스럽고, 꾸미지 않아도 세련돼 보이며, 도시적인 도도함 속에서도 ‘톨레랑스(tolerance)’라는 타인을 향한 배려가 포함된 매력이 그것이다. 


파리가 어떤 도시인가. 위그카페 왕 집권 기(987-996)부터 천 년 이상 프랑스의 수도로 군림하면서, 프랑수아 1세 때는 이탈리아에서 들여온 르네상스 예술과 문화를 꽃피웠고, 18세기 말 왕정을 무너뜨린 프랑스 혁명의 중심에 있었으며, 유럽 대륙을 호령한 나폴레옹 시대를 거쳐 벨 에포크(Belle Époque아름다운 시절)라 불리던 19세기 말에는 세계 문화 예술의 수도이지 않았나. 


켜켜이 쌓여 온 유산을 품은 파리가 매력적인 도시라는 사실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 터. 하지만 이 도시에 살기 위해서는 어떤 각오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현재의 파리는 높은 물가와 잠재한 테러 위험에 날로 심각해지는 치안 문제를 안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계 수치 속 파리는 여전히 전 세계 관광객들로부터 넘치는 사랑을 받는 도시다. 


이 책『카메라 들고 파리지엔을 만나다. 원 제목: (Je suis parisienne)』의 저자, 마리 루이즈 나이싱(Marie Louise Nijsing)은 네덜란드를 중심으로 유럽에서 활동하는 여성 사진작가다. 그는 20여 년간 파리에 머물며 이 도시와 그곳에 사는 여성들에게 깊은 관심을 기울였고, 파리지엔의 목소리를 통해 그들이 어떤 사람이며 어떻게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지를 탐구하는 작업을 꾸준히 이어왔다고 한다. 독자 역시 비슷한 이유로 이 책을 선택했을 테니, 파리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여전히 세계적인 관심의 대상인 것 같다. 


기실 프랑스와 파리, 파리지앵을 주제로 한 책은 이미 나와 있는 것만으로도 그 종류와 수가 엄청나다. 그 가운데 이 책이 갖는 특별함이 있 을까? 저자는 바라왔던 대로 파리의 문화유산이 아닌 파리지엔과 그들의 삶을 카메라로 포착했다. 1921년에 태어난 할머니부터 2021년 생 아기까지, 파리를 관통한 100년의 시간을 파리지엔의 모습 속에 담아 파리 100년사를 완성한 것이다. 


작가는 사진을 통해 확장된 글쓰기 효과를 노린다. 다수의 사진 속에서 우리는 인물과 더불어 그들의 거주 공간을 보게 된다. 인물 사진만으로도 그 사람에 대해 읽어 내는 일이 가능하지만, 실내 공간을 담은 한 컷의 효과는 상당해서, 독자는 인물이 속한 사회와 살아온 역사며 품고 있는 생각까지 유추해 볼 수 있다. 이는 발자크가 소설《고리오 영감》에서 사용한 방 식, 즉 어떤 장소를 매우 상세히 묘사함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그 장소와 관련된 인물의 성격과 그가 처한 상황, 나아가 소설의 전개 방향까지 미루어 짐작하게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굳이 수전 손택의 사진에 관한 정의를 끌어오지 않더라도, 하루라도 사진을 소비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세상에서 사진작가인 저자는 글쓰기와 동일한 기능을 수행하는 작업으로서의 사진을 제시하지 않았나 한다. 연간 8천만 명에 달하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관광객이 찾는 도시이자 패션과 예술의 도시 파리. 하지만 그곳에서 매일매일 살아가는 ‘생활인으로서’ 파리지엔이 들려주는 가공 되지 않은 이야기들을 읽어 나가다 보면, 독자는 관념 속 파리지엔과 현실 속 파리지엔 간 존재하는 간극을 느낄지도 모른다. 


그러나 모진 세월을 견뎌낸 미셸 할머니(1922년 생) 의 편안한 눈빛과 엷은 미소에서부터, 렌즈를 향한 호기심 가득한 눈망울로 이제 막 인생을 시작한 맑디맑은 로즈(2021년 생)의 얼굴 속에서, 빠른 회복 탄력성으로 현재를 수용하며 자신의 삶을 살아나가는 이들 파리지엔의 유연하고도 강인한 마음가짐이라는, 새로운 면모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송천석 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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