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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자연을 닮은, 노래하는 피아니스트 권윤미(Yun-Mi K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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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5-07-14 23:24 조회 88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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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윤미는… 

현재, 피아니스트(Pianiste), 피아노 반주자(Accompagnatrice), 피아노 선생님 (Professeur de Piano)으로 활동 중이다.


만약 음악이 자연의 일부로 실체를 가질 수 있다면, 피아니스트 권윤미는 어쩌면 그 음 악의 실체로 환생한 존재일지도 모른다. 그와 이야기를 나눌수록 ‘그가 음악인지, 음악이 그인지’ 경계를 잊게 될 만큼, 권윤미는 자연의 일부처럼 음악 그 자체로 존재한다. 무대를 즐기는 피아니스트, 무대에서 에너 지를 얻는 음악가, 권윤미는 관객에게서 받는 반응과는 또 다른 차원의 에너지를 무대 자체로부터 느낀다고 말한다. 무대에 선다는 행위 그 자체를 사랑하는 예술가 권윤미를, 파리의 어느 조용한 카페에서 만나 그의 음악 여정을 들을 수 있었다. 


-본인소개를 간략하게 부탁한다.

한국 동덕여자대학교에서 피아노 전공으로 학사 과정을 마쳤고, 그로부터 1년 뒤 프랑스로 유학을 오게 되었다. 조금은 특별한 계기가 있다. 당시 유학을 꿈꾸고는 있었지만, 경제적인 여건이 녹록지 않았는데, 지도 교수님의 말 한마디가 내 인생의 방향을 바꿨다고 할 수 있다. 

2006년 여름, 교수님께 인사를 드리러 갔던 자리에서, 교수님은 "윤미야, 너는 재능도 많 고 끼도 굉장히 있지만, 너의 인생(운명)에 유학이 없다면 아무리 발버둥쳐도 나아가기가 힘들거다. 하지만, 만약 너가 유학을 간다면 프랑스 파리가 너에게 맞을 거다"라고 말씀하셨다. 사실 나는 막연히 ‘유학을 간다면 미국으로 가야겠다’고만 생각했는데, 그 이후로 내 머릿속에는 프랑스, 파리밖에 남지 않았다. 결국 7개월 뒤에 무작정 파리로 오게 됐다. 말하자면, 당시 교수님의 ‘프랑스 파리’라는 그 한마디가 지금의 나를 이끌어준 출발점이다. 


-교수님이 굳이 프랑스를 집어서 추천한 이유가 있었을까?-

물론이다. 나는 어릴 때부터 악보를 빠르게 읽는 ‘초견(初見)’ 능력이 있었다. 프랑스 음악 학교들은 보통 시험을 보기 한두 달 전에 지정곡을 주는데, 짧은 시간 안에 곡을 익히고 해석해서 연주해야 한다. 그래서 초견 실력이 뛰어나면 유리하다. 음악을 받아들이는 속도도 굉장히 중요하다. 당시 교수님께서는 “그런 부분이 너와 잘 맞는다. 네 음악 스타일도 프랑스와 잘 어울릴 것 같다”고 짧게 말씀해 주셨는데, 그 말을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다. 


-프랑스에 도착해서 음악학교에 바로 입학할 수 있었나?

솔직히 말하면, 당시에는 입시에 대한 정보가 전무했고, 연습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그래도 “어디든 꼭 합격해야 한국에 돌아가지 않을 수 있다”는 절실 한 마음 하나로 버텼던 것 같다. 그렇게 ‘준비 아닌 준비’를 약 6개월 정도 하고 시험을 쳤는데, 감사하게도 뤼엘-말메종(RUEIL MALMAISON) 음악원에 합격했다. 시험 당일, 준비한 곡들을 모두 연주한 후 한 심사위원이 “다른 곡도 연주해볼 수 있겠냐”고 물었고, 그때 나도 모르게 드뷔시의 곡을 연주할 수 있다고 말하고는 연주했다. 그 순간이 아직도 기억에 많이 남아 있다. 


-피아노를 전공할 환경이 되지 않았다고 했는데 어떻게 피아노를 시작하게 됐나?

경북 점촌에서 태어나 고등학교까지 그곳에서 자랐다. 피아노는 초등학교 1학년 때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했다. 이와 관련된 어릴 적 일화가 있다. 다섯 살 무렵, 엄마가 나를 한참 찾다가 동네 피아노 교습소 앞에서 나를 발견했다. 당시 문틈 사이로 넋을 놓고 피아노 소리를 듣고 있었다고 한다. 그 뒤로 매일 피아노 치는 흉내만 냈고, 형편이 넉넉하진 않았지만 부모님이 지인을 통해 피아노 학원에 보내줬다. 거의 하루 종일 학원에 머물며 창문 너머로 다른 아이들 연주를 보며 익혔고, 어느 순간 어려운 악보도 읽을 줄 알게 됐다. 초등학교 6학년까지 피아노를 꾸준히 배웠고, 중간에는 바이올린에도 빠져 3년간 배웠다. 중학교 때부터는 노래에 흠뻑 빠졌고, 고등학교에서는 선생님 권유로 팝송 경연대회에 나가 장려상을 받기도 했다. 학창시절, 다양한 음악 콩쿠르에 나가는 걸 마치 취미활동처럼 했던 거 같다. 경제적으로 쉽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부모님은 나의 음악에 대한 열정을 끝까지 응원해 줬고,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 지원해 줬다.


-음악 그 자체를 정말 좋아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피아노를 선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

고3 때 부모님이 피아노 전공을 권유했다. 주변에선 인근 국립대를 추천했지만, 나는 처음부터 서울 진학만이 목표였다. 주말마다 엄마 지인을 통해 서울 선생님에게 입시 레슨을 받으러 다녔는데, 그 과정에서 예고 학생들의 연주를 오가며 보면서 연주하는 자세, 소리, 분위기까지 거의 무의식적으로 많은 걸 배우며 흡수했다. 꾸준히 콩쿠르에도 도전했는데, 항상 1차는 붙었지만 2차는 계속 떨어졌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전국의 콩쿠르에 꾸준히 도전했다. 입시철엔 동덕여대에 수시 단독 지원했고, 시험을 치는 순간 ‘붙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대학에선 각종 노래(가요)대회도 나가며, ‘노래하는 피아니스트’로 이름을 알리기도 했다. 


-프랑스에서 공부하면서도, 피아노 외에 반주, 오르간, 성악 등 다양한 분야를 공부했다.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

나는 피아노 뿐만 아니라 피아노를 위주로 음악 전반에 대한 열정으로 살았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성악 반주자로 일을 하면서 성악 도 전공했다. 한 피아노 선생님의 권유로 반주도 체계적으로 배워야겠다는 생각에 파리 음악원에서 반주자 과정을 다시 전공했다. 현재, 파리 근교의 음악원 피아노 선생님이자, 파리 음악원 전문 반주자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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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2월 콘서트 '베토벤과 그의 만남들' 연주 녹화 중에 (코로나로 인해 콘서트를 녹화해서 링크를 통해 관객들을 만났다.)


-피아니스트와 피아노 반주자는 어떻게 다른가?

전혀 다르다. 피아니스트는 피아노가 중심이 되고, 악보를 해석해 자기만의 음악을 독 창적으로 표현하는 연주자다. 반면 반주자는 음악적 ‘지원자’로서, 함께하는 음악가, 특히 성악가나 독주자와 호흡을 맞추는 역할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성악 반주에서는 상대의 호흡과 소리에 따라 즉흥적으로 전조하거나 리듬을 조정해 안정적으로 연주해야 한다. 오케스트라 반주의 경우엔 여러 악기 파트를 피아노 한 대로 요약해 화음을 구성할 수 있어야 하고, 합창곡은 소프라노, 알토, 테너, 바리톤 등 네 성부를 모두 피아노로 구현해야 한다. 이런 부분은 피아노과에서 배우지 않는 내용이다. 반주자는 여러가지 역할을 할 줄 알아야 하며, 폭넓은 음악적 감각이 요구된다.


-프랑스와 한국 피아노(음악) 교육에는 어떤 차이가 있다고 느끼나?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양국의 사회, 문화랑 비슷한 면이 있는거 같다. 한국은 완성도 (완벽함)를 굉장히 중시하고, 그 목표에 도달하는 속도 역시 빨라야 한다. 반면, 프랑스의 경우 여유가 있다. 실수를 통해 배우는 과정을 존중하고, (표현의) 자유를 중요하게 생각 하는거 같다. 나의 경우, 프랑스에서 가장 크 게 배운 것 중 하나가 쉼표의 의미다. 교수님은 항상 “쉼표는 침묵(silence), 그 침묵 속에서도 음악을 들어라.” 고 말했다. ‘악보에 적 힌 뉘앙스가 아닌 음악안에 모든 것이 있다’ 라는 가르침 속에서 음악의 자유를 느꼈다.


-음악가로서 프랑스에서의 삶은 어떤가?

한국을 떠나기 전부터 프랑스에 정착할 결심을 했다. 일단, 한국에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연주자로 살아가고 싶었다. 지금 프랑스에서는 비록 어려움도 많지만, 그 꿈에 어느 정도 다가선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전반적으로 현재의 삶에 만족한다. 


-특별히 좋아하는 음악가가 있나?

좋아하는 음악가는 없다. 특정 인물보다, 어떤 곡을 들었을 때 마음 안에서 (전율과는 좀 다른) ‘꿈틀거리는 감정’이 있는데, 그런 ‘내 마음을 울리는 곡’이라면, 장르나 작곡가와 상관없이 모두 좋아한다. 한국 음악도 장르 구분 없이 즐긴다. 그래서 만들게 된 성악 앙상블이 ‘볼라티르 산(Volatile SAN)’, ‘산 에서 노래하는 새’ 다. 2018년 네 명의 성악가와 함께 시작했는데, 소프라노(한국인), 알토, 테너, 바리톤, 그리고 나는 반주자로 참여한다. 장르를 넘나들며 한국 노래를 알리는 데 주력한다. 


-앞으로 연주 계획은?

현재 예술 전반을 아우르는 협회를 준비 중이다. 클래식이나 음악에 국한되지 않고, 예 술적인 모든 것을 통합해 자유롭게 활동하는 것이 목표다. 올 여름엔 접이식 전자피아노를 들고 노르망디와 브르타뉴 지방을 걸으며 ‘거리 순회 공연(Concert Itinérant)’을 할 예정이다. 피아노는 악기 특성상 이동이 어렵 지만, 나는 언제 어디서든 음악을 전하고 싶다는 마음이 늘 있다. 관객이 공연장을 찾아 오는 것이 아니라, 내가 먼저 그들에게 다가가 연주하는 나의 꿈을 실현하려 한다. 


<현 경 기자 dongsimjeo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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