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파리아줌마의 <파리 유학생활-그때 그 시절> '파리에서 한국 드라마를 보는 게 기적 같았던 그 시절의 이야기'
페이지 정보
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5-07-14 20:12 조회 34 댓글 0본문
1991년에 방영된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 중의 한 장면
수 년전 파리에 사는 같은 또래의 한국 지인이 "만약에 인터넷이 당시에 있었다면 난 결혼을 안헀을 거야" 라고 한다. 그가 뱉어낸 말에 조금 놀랐다. 그 정도로 한국과 단절된 느낌에 외로웠고, 그 때문에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했다는 것인데, 그녀는 지금 잘 살고 있다. 하지만 그의 말에 전혀 공감하지 못한건 아니다. 그러니 그말을 들은지 수 년이 지나도 이렇게 기억에 남아 있으니 말이다.
파리에 유학할 때 함께 살던 선배 언니가 막 파리에 도착해서 어리버리한 나에게 향수병에 대해 무섭게 이야기해주었다: 유학생활의 고충들 중의 하나가 ‘죽을 것 같이 힘든 향수병’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 정도로 향수병이 힘든 것인가 싶어 선배 언니의 이야기를 귀 담아 들으며, 그 또한 견디고, 겪어내야 할 무 엇처럼 각오를 다진 기억이 있다. 선배 언니가 한국으로 돌아가고 난 뒤에 혼자 지내며 좀 외롭기는 했지만, 향수병이 무엇인지 잘 모르고 파리에서 공부하며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당시는 비디오 테 이프로 영화를 볼 때인데, 유학생 살 림에 비디오 테이프 레코더는 언감생심..하지만 파리에서 영화 공부를 하던 한국인 친구의 집에는 비디오 테이프 레코더가 있었다. 비디오 테이프 레코더가 한국과 프랑스는 방식이 달라 한국 카세트 비디오는 프랑스 비디오 레코더로 볼 수가 없을 때였다. 하지만 그 친구의 어머님이 파리에서 유학하는 딸을 위해 프랑스 방식에 맞게 전환된 비디오 테이프를 보내주신 것이다. 당시 유명했던 한국 드라마, « 여명의 눈동자 »였다.
죽을 만큼 힘들다는 향수병이 한국 드라마를 보면서 도져…
당시 한국 드라마를 파리에서 볼 수 있다는 건 큰 일이자, 거의 기적에 가까웠다. 함께 아는 이들 사이에서는 큰 이벤트였다. 방 창문으로 센강의 강물이 너울너울 흘러가는 것이 보였던, 멋진 뷰를 가진 그 친구 집에 가서 나는 밤을 새워 한국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를 보았다. 오랜만에 한국 드라마를 넋놓고 보았다. 그렇게 몰입해서 보다가, 주인공 여옥이 피난 길에 아들을 잃고 전쟁 고아들을 데려다 키우는 장면부터 눈물이 나오기 시작했다. 한 번 트인 울음은 멈추지를 않았고, 드라마가 끝날 때까지 주체없이 눈물을 흘렸다. 밤을 새우며 한국 드라마 보고, 밤새 운 것이다.
그 다음날 눈은 엄청나게 부어 있었고, 어떻게 집으로 왔는데 스스로 당황스러울 정도로 심한 우울감에 사로잡혔다. 외국 땅에서 한국 드라마 보며 밤새 울어 대었으니 정신이 온전할 리가 있었겠나! 그대로 집에 있다가는 정신이 다른 세계로 넘어갈 거 같은 위기감에 사로잡혀 바로 나와서 센강을 산책을 했고, 센강의 찬 바람이 유학생의 현실을 일깨워 준 것 같이 금방 정신을 차렸던 기억이 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게 내가 겪었던 일종의 향수병이 아니었나 싶다. 그냥 사느라 꾸역꾸역 무의식 속으로 구겨서 집어 넣었던 게 한국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를 보면서 용수철 치솟아 오르듯 올라온 것이 아닐까 짐작해 본다. 5년 안에 학위 따서 한국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계획과는 달리, 나의 삶은 파리에서 계속 되었다. 유학생이자, 아내 그리고 엄마로서….
이곳에서 산 시간이 오래되면 될수록 한국에 대한 그리움은 더 진해져 갔고, 화면 속에 나오는 한국의 거리만 봐도 숨이 쉬어질 것 같은 향수에 짓눌리는 와중에 인터넷이 보급이 되었고, 나는 한동안 한풀이 하듯 한국 드라마를 다운받아 보곤 했었다.
파리에서 한국 드라마를 보는 게 기적 같았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
<파리아줌마>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