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이재형 작가의 <파리의 연인들>(13) 니키 드 생팔과 장 팅겔리
페이지 정보
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5-04-29 04:05 조회 107 댓글 0본문
1990년대의 니키 드 생팔(Nikki de Saint Phalle)과
장 팅겔리(Jean Tinguely)
-반항심으로 가득 찬 다재다능한 소녀
니키 드 생팔은 1930년 프랑스 뇌이쉬르센의 프랑스 부르주아 가문에서 태어난 프랑스계 미국인 예술가이다. 처음에는 모델로 활동했으나 이후 화가, 조각가, 영화감독으로 변신한 그녀는 도발적이고 다채로우며 때로는 고발적이면서도 희망이 깃든 작품들로 널리 알려졌다. 그녀는 매우 독립적이며 반 항적인 성향을 지닌 여성으로서, 평생에 걸쳐 부당함과 불평등에 맞서 싸웠다.두 아이의 어머니였던 그녀는 60세가 넘어서야 자기 딸에게 바친 책을 통해 어린 시절 아버지로부터 겪었던 성폭력과 근친상간을 고백했다. 이 충격적인 사실은 대중에게 뒤늦게 알려졌고, 그녀의 수많은 작품과 투쟁을 이해하는 데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했다. 프랑스 귀족 사회에서 태어나 종교 교육 기관에서 엄격한 교육을 받았던 그녀는 곧 체제에 반항하며 강요된 규범과 여성에게 주어 진 가정 내 역할을 거부했다.
-정신병원에서 만난 예술
그녀는 18세가 되던 해, 시인 헨리 매튜스 와 함께 가출하여 두 아이를 낳았다. 그러 나 22세에 심각한 신경쇠약에 빠져 프랑스 니스의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바로 이 사건이 그녀를 예술로 이끌었다. 이전까지 정식 미술 교육을 받은 적 없던 그녀는, 의사들의 권유로 사회에 대한 분노와 불만을 그림으로 표현하기 시작했다. 그녀에게 있어 예술은 치유이자 정화의 과정이 되었다. 그녀의 작품은 분노와 고통을 담아내는 자전적 탈출구가 되었고, 이때부터 예술은 그녀의 삶의 구원자가 되었다.
-장 팅겔리와의 만남, 그리고 한 예술가의 탄생
정신병원에서 퇴원한 이후, 니키 드 생팔은 스위스 출신 예술가 장 팅겔리를 만나게 된다. 이 만남은 그녀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고, 그 후 두 사람은 사랑뿐 아니라 무엇보다도 예술적인 열정으로 얽힌 깊은 관계를 이어가게 된다. 사회적 금기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정신이 두 사람을 강하게 결속시켰고, 장 팅겔리는 니키에게 창작에 대한 자신감을 심어주며 말했다.
“기술은 아무것도 아니야. 아이디어와 예술가적 천재성만 있다면 기술은 얼마든지 배울 수 있어.”
두 사람이 곧 함께 살기 시작하자, 니키는 “회화에 피를 흘리게 하고 싶다”는 강한 욕구를 느끼게 된다. 이에 장은 그녀에게 소총을 하나 사주었고, 니키는 그 뒤로 2년간 ‘티르(Tirs)’, 즉 ‘사격 회화’ 작업에 몰두한다. 이 작업은 회화, 조각, 퍼포먼스를 넘나드는 파격적인 예술 실험이었다. 그녀는 석고로 형상을 만들고 그것을 새하얗게 칠한 뒤 내부에 다양한 색의 물감을 숨겨 넣었다. 그러고 나서 총으로 그 형상을 쏘면, 내부의 물감이 폭발하듯 터지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이 폭력성과 해방의 순간을 통해 니키는 자신의 분노와 고통, 그리고 예술 적 해방을 극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니키와 장 : 사랑과 예술의 듀오
장과 공동 작업을 한 니키 드 생팔의 <스트
라빈스키 분수(Fontaine Stravinsky)>
니키 드 생팔과 장 팅겔리는 종종 함께 작업했다. 때때로 그들의 작품은 서로 맞부딪치기도 했는데, 니키는 여성상을 나타내는 '나나(Nanas)'를, 장은 남성성을 상징하는 기계 장치들을 만들었다. 장 팅겔리는 니키의 거대한 조형 작품들의 형태와 비율을 잡아주는 데 자주 도움을 주 었다. 그는 기술자로서 자신의 전문성과 노하우를 제공했다. 두 사람은 종종 기존 미술사 속 여성의 역할(남성 예술가의 작품에 복무하는 존재)을 전복시키려 했다. 여기서는 오히려 장이 니키의 작품에 자기가 가진 기술로 봉사하는 구조였다.
그들은 공동 작업도 많이 했다. 대표적인 작품이 1966년 스웨덴 스톡홀름의 모데르나 뮤지엄에서 함께 만든 혼(Hon)이다. 혼은 길이 28m, 너비 7m, 높이 8m에 달하는 거대한 여성 조각상이다. ‘Hon’은 스웨덴어로 '그녀'를 뜻하며, 거대한 "다산의 이교 여신"을 형상화했다. 이 조각물 내부에는 여러 설치 작품이 들어서 있으며, 관람객은 조각상의 자궁 부분을 통해 내부로 들어가야 했다. 조각상의 성기 부위를 통해 입장하게 한 것은 여성성과 생식에 대한 찬가를 의미했다. 주변 사람들의 증언에 따르면, 두 사람은 작업할 때 거의 황홀 상태나 트랜스 상태에 가까운 흥분 속에서 열정적으로 몰입했다고 한다.
장과 공동 작업한 니키 드 생팔의 설치 작품 "혼(Hon)" 제작 과정 중에
또한 그들 사이에는 서로를 끌어올리는 "활발하고 긍정적인 경쟁"이 존재했다. 이렇게 니키 드 생팔은 1960년대에 참여적이고 대중적인 예술가로 자리매김하며, 장 팅겔리와 함께 국제적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니키 드 생팔은 자신의 예술적 천재성과 표현을 통해, 내면의 고통과 싸우며 극복해 냈다. 또한, 그녀가 또 다른 예술가 장 팅겔리와 함께한 삶은 사랑의 게임이며 무엇보다 사회의 관습과 불평등, 불의에 맞서 목소리를 높인 이야기이다.
<이재형 작가>
- 이전글 이근혁의 <학부모와 청소년을 위한 한국사 한 스푼>-신라 시대의 화랑도: 교육의 힘
- 다음글 나의 파리광장 답사기- 소르본 광장 (Place de la Sorbonne), 아홉 번째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