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 [화가 아틀리에 탐방] 고요한 열정, 감각의 반전을 실험하는 작가 임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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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5-04-22 05:23 조회 135 댓글 0본문
<파리광장>과 인터뷰 중인 임현정 작가 ©현 경 기자
사소한 일상 속 오브제/사물은 단순한 도구 를 넘어, 우리가 잊고 지냈던 기억, 경험 그리고 숨겨진 욕망을 상기시키거나, 새로운 상상의 가능성을 열어준다. 작가 임현정의 작업에서 사물(오브제)은 더 이상 단순한 물건이 아니다. 그것은 작가의 개인적 경험이나 사회적 기억이 투영된 매개체로 기능한다. 오브제(사물)의 재구성을 통해 그는 개인의 경험을 넘어 기억의 공유나 감정의 회복, 또는 일상의 재해석이나 사회적 공감 그리고 상상력의 해방과 같은 집단적 욕망까지도 포착한다. 임현정의 작업은 철저하게 개념적인 접근을 기반으로 하지만, 그 진행 방식은 상당히 직관적이고 감각적이다. 반전의 반전을 거듭하는 작업 방식이 매력적인 작가 임현정.
지난 3월 파리 한국 문화원(Centre Culturel Coréen, Paris, France)에서 열린 소나무 협회 전시(« Les Contours du Temps » - Exposition de l’Association des Artistes Sonamou)에서 인상 깊었던 태피스트리(Tapestry) 설치 작품의 주인공, 그와 만나 그의 작업 세계를 더 깊이 들여다볼 수 있었다.
한국에서 영문학 전공을 하고, 프랑스에서 본격적으로 미술을 공부한 것으로 알고 있다.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다. 2005년 프랑스에 미술 공부를 하기 위해 유학 왔다. 2006 년 리옹 보자르에 입학 후 학사(DNA, Ecole Nationale Supérieur des Beaux arts de Lyon)와 석사(DNSEP) 과정을 마쳤다. 2011 년 졸업 후 파리에 정착해 작업하고 있다.
보통 미술을 전공하고 다른 길을 걷는 경우가 많은데, 반대의 경우가 인상적이다. 그림을 좋아했나?
-종종 전공을 바꾼 것에 포커스가 맞춰진다. 하지만, 내 개인적으로는 (전공을 바꾼 것이) 중대한 결심이 있었거나 그런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예술가의 길로) 흘러간 것이다. 딱히 그림을 좋아하기보다는 창작 활동하는 것을 좋아했다. 예를 들면, 영문학을 전공했지만 연극 공연 시작 전 무대가 너무 좋았다. 설치된 무대에서,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 모르는 그 상황’이 너무 설렌다. 학창시절 글 쓰는 것을 좋아했고, 어릴 때부터 그리는 것보다는 무엇인가 ‘만드는 것’을 좋아했다.
영어권 나라가 아닌 프랑스로 오게 된 이유가 특별히 있나?
-처음부터 미국은 관심이 없었고, 딱히 프랑스를 생각한 것도 아니었다. 당시 여러가지 상황을 고려하다 보니 프랑스로 오게 됐다. 개인적으로 (프랑스 보다는) 독일 등 유럽의 나라들을 중심에 뒀고, 특히 북유럽의 나라들, 핀란드나 덴마크에서 디자인을 배우고 싶기도 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북유럽 나라의 경우 언어적 접근성이 떨어졌다. 예를 들면, 나는 학부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는데, 그 나라 언어로만 수업을 한다. 그런데, 당시 한국에는 북유럽 국가들의 언어를 배울 곳이 마땅치 않았다. 참고로, (북유럽 국가도) 석사부터는 영어 수업이 가능하다.
프랑스에서 미술공부를 시작했다. 프랑스의 장점이나 특별한 매력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있을까?
-나의 경우 리옹 보자르에서 공부하면서 어떤 ‘제한을 두지 않는다’는 점이 좋았다. 회화나 조각 등 전공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아트’라는 이름 아래 어떤 재료를 사용하든, 어떤 행동을 하든 모든 것이 다 허용되고 가능했다. 심지어 낭독을 해도 상관없다. 이런 걸 염두하고 프랑스를 선택한 것은 아니었지만, (와서 겪으면서) 이런 부분이 상당히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Ecart , 2015-plastic bead, cotton thread, metal bar, 170 *300 cm 사진출처: 임현정 작가 홈페이지
학교 졸업 후 바로 전업 작가가 된 계기가 있나?
-리옹 보자르 재학 당시 학교에 전시 지원 공모전 공고, MAPRA(Maison arts plastiques Rhone-Alpes)가 났다. 마지막 학년에 바로 지원했는데 당선되어, 학교 졸업을 하기 전에 개인전을 개최할 수 있었다. 이것이 작가로서 큰 동기부여가 됐다.
작품에 관한 전반적인 설명 부탁한다. 설치, 입체 조형물 등 작업 내용이 굉장히 다채롭다.
-나의 경우, 정해진 작업 방식이나 주제가 없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입체 작업을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작업 아이디어가 한번도 평면(작업)으로 떠오른 적이 없다. 언제나 작품 아이디어가 입체작업 방식으로 떠오른다. 여기에, 하나하나 수작업으로 만드는 수공적인 작업이 많다. 또 다른 측면은, 아이디어가 떠오르고 (작품)재료를 정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혹은 의도치 않게 재료부터 정해진다. 한마디로, ‘오브제’에 관심이 많다. 특별한 것이 아닌 일상적인 오브제(물 건/사물)다. 일상생활을 하다가 만나는 물건, 더 넓게는 꼭 물건이 아닐 수도 있다.
관념적인 것들, 들리는 소리, 시각적인 어떤 것, 모두가 다 경험하는 것 등 일상 주변의 모든 것을 다 포함한다. 이 오브제에 대해선 내가 생각하는 이미지가 있고, 각자가 생각하는 이미지가 있다. 그리고 그것은 모두 다르다. 하지만 이 오브제는 똑같다. 이 부분이 바로 내 작업의 포인트라 할 수 있다. 대부분 작가들이 작품을 통해 던지는 메시지가 확실하다면, 내 작업의 경우 느끼는 것은 각자의 몫이기 때문에 (관객이) 더 편하게 다가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얼마전 문화원에서 있었던 소나무 예술가 협회 정기전에서
카페트 스타일의 작품 <Ecart, 2015>를 설치 중인 임현정 작가
©임현정 작가가 제공한 영상 캡쳐
예술과 사물, 경험, 일상성 등 다층적인 접근과 개념이 인상적이고 작가로서의 시선이 분명하다. 이에 반해 창작 과정은 매우 직관적이고 감각적이다.
-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 봤다: 난 오브제에 관심이 있고, 그것을 통해 ‘다른 사람의 경험을 끌어들이고 싶다’고 하는데, 그럼 난 다른 이들의 삶에 얼마나 관심이 있나? 이런 생각해 본 적이 있다. 난 지극히 아날로그적인 사람이다. 그 흔한 소셜 네트워크에도 관심이 없다. 다른 사람의 삶을 들여다 보고 관심을 갖거나 하는 사람이 아니다. 결국, 내 작업의 모든 기본은 ‘기억’, ‘나의 삶’, ‘경험’에서 나온 것이다. 이것을 나누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내 기억을 나누는 것이 아니다. 나의 작품, ‘그 오브제’를 통해 각자 본인의 기억을 ‘소환’할 수 있다. 각자 다른 경험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내 작품, 오브제를 보고 (나와는) 다른 생각할 수 있고 다른 경험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일상성과 사물의 실루엣을 연결 짓는 방식이 철학적이고 흥미롭다. 작품을 위한 ‘오브제’는 주로 어디서 발견되(하)는가?
-대부분은 나의 경험, 기억과 관련 있는 물건들이 많다. 예를 들면, ‘태피스트리 Tapestry)’ 작업의 경우, 그런 카페트가 거실에 깔려 있던 기억이 있다. 붉은 색상의 그 카페트의 이미지는 누가 봐도 ‘카페트’를 떠 올릴 수 있는 그런 흔한 ‘모티브’로 되어 있다. 개인적으로 모티브에 관심이 많은데, 특히 타일이나 카페트에 사용된 이미지가 재밌다고 생각한다. 이런 모티브가 재미있는 점이, 특별히 구상적이지도 추상적이지도 않다는 것이다. 이런 면이 나에게 매우 매력적이다. 모티브는 사람들이 쉽게 알 수 있기도 하고, 누구나가 경험 속에 존재하는 것이기도 하다.
Une source ou un piège, 2023- tile , 30*30*30 cm 사진출처: 임현정 작가 홈페이지
요즘 주로 하는 작업, 관심사는 무엇인가?
-틈’에 관해서 작업을 많이 한다. 너무 매력적인 면이, 틈이 갈라져 있다고 생각하지만, 어느 순간 ‘저 틈이 갈라진 것인가? 갈라지게 만든 것인가?’ 라는 의문이 들면서, 이 두 가지가 모두 가능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틈이 작을 수도 있지만, 더 커져버릴 수도 있다. 예전에는 틈이라는 것에서 ‘경계의 모호 함’에 집중했다면, 근래에는 그 틈이라는 것이 ‘릴렉스, 휴식 같은 것이 될 수도 있다’라는 생각을 한다. 타일을 예로 들면, 사람들은 (타일의) 틈을 보면서 흠이 있는 제품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다르게 생각하면 ‘완벽하지 않음’에서 오는 ‘휴식 같은 편안함’을 느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순되는 것 을 섞는 것에 매력을 느낀다. 같은 맥락에서, 태피스트리 작업의 경우, 구상과 추상이 섞여 있고, 작업 방식은 지극히 수공예적이지만, 재료는 플라스틱이다. 하지만 픽셀화되어 있기 때문에 전체적인 느낌은 수공예적이지 않고 좀 더 완화된, 기계적인 느낌이 들기도 한다.
주부, 두 아이의 엄마이자 아내 이 모든 역할을 다하면서, 작가로서 작업을 병행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어떻게 조절하나?
-작업과 일상의 삶을 최대한 분리하려고 노력한다. 작업 장소와 일상 공간도 확실히 분리한다. 작업은 아이들이 없는 시간에 집중해서 한다. 사실 이 모든 것들을 분리시킨다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노력한다. 작업에 몰입할 때는 예민해질 수밖에 없는 부분이 있다. 이런 부분을 가족이 많이 이해해 준다.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계속 작업을 하고 싶고, 지금까지 해온 것 보다 좀 더 집중해서 많은 작품을 하려고 한다.
<현 경 기자 dongsimjeo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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