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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이재형 작가의 <파리의 연인들>(11) 알랭 들롱과 로미 슈나이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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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5-04-15 04:00 조회 15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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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적으로 약혼한 사이였던 두 스타, 알랭 들롱과 로미 슈나이더 (1959년)


알랭 들롱과 로미 슈나이더는 피에르 가스 파르-위트 감독의 영화 <크리스틴>을 촬영하면서 처음 만났다. 1958년 당시 로미 슈나이더는 이미 유럽에서 엄청난 스타였고, 에른스트 마리슈카 감독의 전설적인 3부작 <시씨>를 포함해 무려 11편의 영화에 출연한 경력을 가지고 있었다. 불과 20세에 불과했던 그녀는 이미 함께 연기할 상대 배우를 직접 고를 수 있는 특권을 누리고 있었고, 그 덕분에 아직 대중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던 알랭 들롱의 사진을 보고 그를 선택하게 된다.

밤색 머리카락과 코발트색 눈, 신선한 젊은 배우의 풍모를 지닌 23세의 프랑스 배우 알랭 들롱은 프란츠 로브하이너 역에 완벽하게 어울렸고, 독일인 약혼녀의 마음을 훔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오를리 공항에서의 첫 만남 

영화 <크리스틴>의 첫 일정으로 제작진은 두 배우가 서로를 알아가고, 동시에 언론 앞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오를리 공항에서의 만남을 주선했다. 연출가에게 알랭 들롱을 추천한 사람이 바로 로미 슈나이더였지만, 처음에 그녀는 이 젊은 배우에게 어떤 호감도 느끼지 못했다. 비행기에서 내린 뒤, 제작진의 지시에 따라 알랭 들롱은 사진기자들의 플래시 세례 속에서 로미에게 꽃다발을 건넸지만, 첫눈에 반하는 순간은 찾아오지 않았다.


로미 슈나이더는 당시를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다. 


 “너무 잘생기고, 너무 잘 손질된 머리에, 넥타이를 맨 채 지나치게 유행스러운 양복을 입은 청년이 나를 맞이했죠.” 


이처럼 팽팽한 긴장감이 감도는 첫 만남은 피에르 가스파르-위트 감독의 영화 촬영 현장에서의 갈등으로 이어졌다.하지만, 비호감에서 사랑까지는 단 한 걸 음뿐이었다. 결국 로미는 알랭의 매력에 빠 지고, 두 사람은 전설적인 커플이 되었다. <크리스틴> 촬영 현장에서 첫 만남이 다소 어색하게 끝난 뒤, 두 배우는 서로에 대한 반감을 억누르고 영화 속 젊은연인인 크리스틴과 프란츠를 연기해야 했다. 


이 작품에서 로미 슈나이더는 어머니 마그다 슈나이더가 1933년 막스 오퓔스 감독 의 독일 드라마 <리벨라이>에서 이미 연기했던 ‘크리스틴’ 역을 다시 맡았다. 서로에 대한 선입견으로 인해 둘의 관계는 더욱 복잡해졌고, 게다가 로미 슈나이더는 프랑스어를 한 마디도 할 줄 몰랐다. 알랭 들롱은 그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정말 예쁘지만, 너무 변덕스럽고 지루한 여자였어요.” 


반면에 오스트리아 출신으로 엄격하고 완벽주의적인 로미는 자유분방하고 가벼운 프 랑스인의 성격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늘 촬영장에 늦게 나타났어요. 미친듯한 속도로 파리를 질주하며 스포츠카를 몰고 왔죠. 나는 도저히 참을 수 없었어요. 우리 사이엔 늘 전쟁 같은 긴장이 감돌고 있었어요.” 


두 사람의 강한 성격은 충돌했지만, 비엔나에서의 촬영이 이어지면서 마법 같은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한다. 로미 슈나이더는 점 점 알랭 들롱의 매력과 타고난 재능에 빠져 들었고, 마음의 문을 열게 된다. 그렇게 점차 두 배우는 서로에게 가까워졌고, 결국 떨어질 수 없는 사이가 되었다. 


알랭 들롱은 나중에 <파리 마치>지에 실린 작별 편지에서 이렇게 회상한다. 


“우리는 자주 이런 연인만의 질문을 주고 받곤 했어요. ‘누가 먼저 사랑에 빠졌을까, 너 일까 나일까?’ 우리는 숫자를 셌죠. ‘하나, 둘, 셋!’ 그리고 이렇게 대답했어요. ‘너도 아니 고 나도 아니야! 함께야!” 


이 전설적인 연인은 그리 오래 기다리지도 않고 약혼을 하게 되었고, 모두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파리에서 함께 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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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8년 영화 <크리스틴(Christine)>에서 알랭 들롱과 로미 슈나이더


로미 슈나이더, ‘가장 프랑스적인 독일 여배우’ 

어머니와 의붓아버지의 영향력에서 벗어 날 수 있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한 로미 슈나 이더는 알랭 들롱과 함께 파리로 이주하는 것을 일종의 ‘탈출’로 받아들였다. 파리에 정착한 그녀는 프랑스어를 배우기 시작했고, 이로 인해 고국인 독일에서는 ‘배신자’로 낙인찍히며 외면받게 된다. 독일 언론은 그녀가 조국을 배신하고, 오스트리아 독일의 정체성보다 프랑스 남성을 선택한 것을 강하게 비난했다. 한편, 알랭 들롱 역시 비난에서 자유롭지 않 았다. 그는 “유괴범”, “사칭자”, “여심을 훔치 는 남자” 등 온갖 비난을 받으며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었지만, 두 사람은 그런 외부의 시선에도 불구하고 당당하게 사랑을 이어갔다.


로미 슈나이더 의 프랑스에 대한 애정은 그토록 깊었기에, 심지어 독일 무대에 올라 프랑스어로 안톤 체 호프의 <갈매기> 에 출연하기도 했다. 그녀는 생전에 두 편의 영화, <사랑이 중요한 거야 >와 <단순한 이야기>로 각각 세자르 영화제 여우주 연상을 수상하며 프랑스 영화계에서 확고한 위치를 다졌다. 


영원한 연인들 

로미 슈나이더와 알랭 들롱 커플이 많은 이들의 기억에 강하게 남은 이유는, 아마도 그들의 사랑이 가장 영화적인 동시에 가장 매혹적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 전설적인 영화계의 커플이 함께한 시간은 단지 5년에 불과했다. 열정적이면서도 격정적인 그 5년은 두 사람뿐만 아니라 모든 이들의 기억 속에 선명히 남아 있다. 파트너인 알랭 들롱이 빠르게 성공 가도를 달리는 동안, 자신은 정체되어 있다는 현실에 괴로워하던 로미 슈나이더는, 마침내 콜 럼비아 영화사의 초청으로 할리우드에 진출하며 다시 커리어의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그러나 이 지리적인 이별은 결국 둘의 관계의 끝을 의미하게 되었고, 알랭 들롱은 15 쪽에 달하는 편지 한 통과 꽃다발을 남기고 로미를 떠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이후에도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으며, 자크 드레이 감독의 전설적인 영화 <수영장>에서 다시 함께 연기하게 된다. 1982년 로미 슈나이더가 세상을 떠났을 때, 알랭 들롱은 그녀의 곁을 지켰지만 공식적인 장례식에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는 <파리 마치>에 실린 작별 편지에서 여 전히 그녀를 향한 깊은 애정을 드러내며 이렇게 글을 맺었다. 


 “나는 너에게서 독일어를 몇 마디 배웠어. ‘Ich liebe dich’. 사랑해. 사랑해, 나의 푸펠레(Puppelé).” 



<이재형 작가>


-이재형 작가와 함께하는 4월 파리 미술관 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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