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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 [화가 아틀리에 탐방] 보석 공예가에서 세필 화가로 거듭난 작가, 이현정 -세필로 세월을 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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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5-03-18 05:02 조회 25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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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정 작가 

이현정 작가 작업실에서 / ©현 경 기자


세필 끝으로 무수한 세월의 발자취를 그려가는 작가 이현정을 파리의 작업실에서 만났다. 작가의 작품은 이미 익히 알고 있었지만, 그의 작업 과정이 고스란히 배어 있는 작업 공간을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에 발걸음이 가벼웠다. 몇 년 전 어느 전시에서 처음 본 그의 작품은 진한 무채색의 단순한 세필화였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채색 목판화 ‘우키 요에’(浮世絵,17-19세기 에도 시대를 풍미 했던 민중 미술)를 떠올리게 할 만큼 대담하고 강렬했다. 작품 전체에서 느껴지는 역동적인 이미지는 가히 ‘가쓰시카 호쿠사이(葛 飾北)’의 목판화 작품 ‘카나가와 해변의 거대한 파도’를 연상시켰다. 그러나, 화면 전 체를 세필 드로잉으로 한 필 한 필 채워 넣은 그의 작품은 단순히 대범하기보다는, 오히려 섬세함과 치밀함으로 긴장감을 극대화하고 있었다. 


작업실에 들어서자, 예상대로 시간의 흐름을 엮어놓은듯한 ‘선’들이 공간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한 눈에도 엄청난 노동력이 체감된다. 


작품의 주제(모티브)가 무엇인가?

-내 작업의 주제는 ‘길’이다. « 인생의 길 ». ‘내 인생의 길을 찾아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작품 전체에서 시각화된 운동감, 다양한 흐름들, 오르막과 내리막, 꺾이고 휘고 변하는 모든 움직임들은 선을 엮거나 강약을 조절하며 무수히 많은 선을 그리고 쌓아 올린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면으로 형성된 이미지다. 한 개의 선은 선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작품의 주제, 내 인생의 길을 표현하기 위한 나만의 방식이라 할 수 있다.


본인 소개를 부탁한다. 프랑스에 거주한지 얼마나 되었나?

-한국에서 회화를 전공했다(세종대 90학번). 졸업하고 1995년(23세)에 프랑스로 유학왔다. 학창시절부터 프랑스와 프랑스어에 대한 동경, 이 두 가지가 맞물렸던 거 같다. 뭔가 자유로울 것 같은 느낌을 가지고 있었다. 그 런데, 막상 와 보니 공립학교에서 회화 공부를 지속하기에는 시간적, 경제적 여유가 부족했다. 빨리 무엇인가를 배워 생계유지, 자 립을 해야겠다는 마음에 찾은 것이 보석 디자인이었다. 관련 학교에서 자격증을 취득하고, 보석 디자이너로 취업해 7년간 직장생활을 했다. 하지만, 직장생활, 아이 양육으로 내 시간은 없었고, 너무 힘들었다. 그래서, 퇴사를 하고 내 이름으로 보석 아뜰리에를 10년 간 운영하며 사업을 했다. 화가의 길로 들어 선 것은 40대 초반이다. 이후 2022년부터 파리 루이 앤 삭(Louis & Sack) 갤러리 전속 작가로 활동 중이다. 


작가 이력이 특이하다. 보석 디자이너에서 전업 작가로 돌아선 결정적인 계기가 있다면?

-2013년 보석 디자이너로 사업을 할 당시 우연히 팔레 드 도쿄에서 열린 보석 공예 전시에 참여했다. 그 전시에 보석 작품의 디자인 컨셉과 관련된 내 그림을 같이 전시했는데, 여성 세 분이 전시된 그림을 한 점씩 구입했다. 거기서 자신감을 얻었다. "내 그림도 팔릴 수 있구나…내 그림을 집에 두고 보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구나…" 이런 자각이 들면서 오랫동안 묵혀 놨던 그림을 다시 펼쳐서 (보석이 아닌) 그림으로 전시를 준비했다. 2014년부터 유럽이든 어디든 방방곳곳 다니며 자비로 전시 공간도 빌려가며 무조건 내작품 전시에 올인했다. 당시에는 내 작품으로 전시만 할 수 있다면 어디든, 어떤 요청도 거절하지 않았다. 


 보석 디자인은 그 이후 완전히 그만둔 것인가?

-아니다. 경제적인 이유도 있고, 2017년까지도 보석 디자인과 작업을 병행했다. 2018 년부터 여기저기 (상업) 갤러리에서 같이 일 (판매)해보자는 제안이 오면서, 보석 디자인은 완전히 그만뒀다. 갤러리에서 본격적으로 전시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현재의 한지 세필화 전에도 그림을 그렸나? 

-보석 디자인을 하며 아뜰리에 한 켠에서 유화로 풍경화를 그리며, 마음을 비웠다. 유 화는 시간의 구애를 받지 않고 그릴 수 있고, 계속해서 덧칠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기에 즐겨 그렸다. 


돌고 돌아온 그림인데, 전체적으로 동양적인 요소가 매우 진하게 풍긴다.

-일단 재료가 한지, 먹이다. 처음에 먹으로 시작하고, 먹으로 틀이 많이 잡힌다. 재료는 모두 한국에서 가져온다. 이런 한지 작업은 2012년경 시작 한 거 같다. 심적으로 지쳐 있던 어느 날 작업실에서 우연히 한지를 발견했다. 뭔가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학창 시절 내가 좋아했던 종이 죽 만들기를 시도했다. 하다 보니 마음이 안정되고 좋았다. 종이 죽으로 해체된 것으로 다시 자유롭게 만든 것이 한지 종이 판(배경)이다.

그 위에 붓으로 그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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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정 작가 작업실에서 / ©현 경 기자


작업 방식이 궁금하다. 시간은 얼마나 걸리나?

-종이(한지), 물, 먹만 사용한다. 한지를 물 에 풀어 죽처럼 만든 뒤, 바닥에 평평하게 펼쳐서 손으로 꾹꾹 누르기도 하고, 발로 밟기도 하며 두툼한 그림판(배경)을 만든다. 그림판은 주로 선풍기로 건조하고 날씨가 좋지 않으면 가끔 드라이기도 사용한다. 이 종이 배경 위에 주로 먹과 세필만을 사용해서 하나하나 선을 그려 나간다. 뭔가 계획을 하거나 컨셉을 잡아 그리는 건 아니다. 종이를 만들면서 어떻게 할지 생각하고 즉흥적으로 마음 가는 대로 그린다.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도 직관적으로 그릴 뿐이다. 한 작품을 완성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말하기 어렵다. 동시에 두 세 작품을 진행한다.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것만은 틀림없다.


특별히 세필을 사용해 선을 그리는 이유가 있나?

-나한테는 이런 선 하나가 하루하루고, 이 것이 모여서 내 인생의 길이 만들어지는 거라 할 수 있다. 이렇게 선이 엉켜 있고 길과 만나고, 이런 모든 게 사람 사는 얘기 같은 거다. 나는 작업을 통해 그런 얘기를 많이 하고 싶다. 감동보다는 오히려 내 작품 앞에선 누군가 인생의 한 시점을 건드릴 수 있는 작업을 할 수 있다면 좋을 같다. 


화려하지 않은 색상을 선호하는 느낌이다.

-그림을 보면 작가와 굉장히 많이 닮았다. 그림과 작가가 매치가 안 되는 경우는 거의 드물다. 내게 있는 것을 그대로 들어낸 결과물 아닐까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색깔이 별로 없다. 또, 아직까지 먹을 사용하는 것에 푹 빠져 있기도 하다. 농도에 따라 변하는 색깔의 뉘앙스가 엄청나다. 


중간중간 색을 쓰기도 한 작품들이 눈에 띈다

-코비드 기간에 한 작품들이다. 당시 작업 실에서 혼자 자유롭게 작업만 했다. 햇빛을 보기 힘드니까 그림에라도 빛을 좀 넣어봐야겠다는 생각에 노란색을 입힌 것이다. 코비드 기간에 엄청 많은 작업을 했다. 


작가로서 앞으로의 계획은? 

-사실 화가로서의 이력은 평생 작업한 작가들과 비교할 수 없을 것이다. 엄청난 예술가가 되겠다 같은 마음보다는, 나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고 싶다. 어릴 때부터 그림이 좋아서 시작했고, 지금도 좋아서 하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다. 이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나만 좋은 작업이 아닌, 작가로서 내 작품이 보는 이들에게 어떤 감동이나 힘을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꿈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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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경 기자 dongsimjeo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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