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한국 영화, 더 알고 싶어요" - 낭시 한국 영화 상영회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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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5-01-30 08:45 조회 378 댓글 0본문
2025년 1월 23일 목요일 오후 낭시역에 내렸다. 마중 나온 파트리시아를 만나 인사를 나누고 바로 상영관으로 향했다. 낭시 역 주변은 한창 공사 중이었다. 낭시의 오래된 전차가 보수공사를 거쳐 재개통될 예정이라는 파트리시아의 설명을 들으며 잠시 걷다 보니 벌써 ‘Caméo Commanderie’라는 이름의 극장에 도착했다. 불어로 ‘art et essai cinema’. 예술영화 및 실험영화 상영관이라 번역할 수 있겠다.
이 상영관들의 창립자들은 소위 시네필(cinéphile)이라 불리는 영화광들이다. 이 분들이 젊으셨을 때 주도하셨던 시네마테크 운동은 당시 상업 영화 중심의 영화 산업에 대한 비판과 함께 영화를 예술 작품으로 인식하고 이를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상영하자는 움직임이었고, 이 아담한 영화관들의 설립자들은 시네마테크 운동의 각 마을 대표 선수들이셨던 것이다.
이렇게 프랑스에서 시작되어 전 세계로 확산된 영화 문화를 그들의 자녀와 손자 세대인 현재의 시민들이 이어 나가고 있다. 이들은 지역 사회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상영관을 중심으로 다양한 프로그램과 행사를 기획 및 실행하는데, 그들의 영화에 대한 사랑과 열정 그리고 자부심은 그야말로 대단하다.
또 하나 독특한 이들의 문화는 바로 상영 후의 토론이다. 나는 마치 일본만화 ‘고독한 미식가’의 주인공처럼 그날 저녁 낭시라는 낯선 도시의 한 극장에 들어서며 설렜다. 낭시의 시네마테크 운동의 후예들은 내가 추천한 한국영화를 관람하고 내게 어떤 질문을 던지고 나와 어떤 이야기를 나누게 될까 ? 즐거운 생각을 하는 사이 어느덧 객석은 만석이 되었다.
영화를 본 후 관객과의 대화가 시작되었다. 10시가 넘은 저녁 시간. 한 젊은 부부가 « 애기를 베이비시터 에게 맡겨서 귀가해야 해요. 정말 죄송합니다»라고 정중히 말하고 상영관을 빠져나갔다. 그런데…그런데 말이다. 그 이후 아무도 움직이질 않는다.
보통 관객과의 대화는 30분 이내인데, 1시간이 지나도 관객들은 나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1시간 30분 정도가 지났을까? 영사기사가 영사실에서 나왔다. « 집에 가세요. 문 닫아요 »라고 할 줄 알았다(파리의 기메 박물관에서는 그랬다). 그런데 알고 보니 영사기사도 내게 질문을 던지러 나온 것이었다. 어떤 남자는 자신이 한 서점의 주인이라고 인사를 했다.
다음날 저녁에는 세미나가 있었고, 나는 한국영화와 문학의 관계에 대하여 1시간 30분 동안 강연을 하였다. 그런데 어제 왔던 서점 주인이 한국 관련 책을 한 보따리 들고 와서는 전시를 하고 현장 판매를 했다. 그 중에는 내 책들도 있었는데 책을 산 사람들이 사인을 해달라고 몰려들었다. 심지어 한강 작가의 책을 사가지고 와서는 그 책에다 사인을 해달라고 하는 이도 있었다.
주최측에서 간단한 식사와 와인을 준비해 리셉션이 이어졌다. 다시 영화광들의 질문 공세가 시작됐다. 수많은 질문을 받고 대답하며 이들의 한국 영화에 대한 지식과 열정이 얼마나 넓고도 강렬한지 알 수 있었다. 게다가 영화를 둘러싼 역사와 정치 및 문화적 소양까지. 그저 놀라웠다. 나는 이틀째 저녁을 걸렀지만 즐거웠고 충만했다.
호텔로 돌아가는 중에 한 무리의 젊은이들이 카페에 모여 있었다. 그들 중에는 낯익은 얼굴들이 있었고, 이들은 나의 등을 떠밀어 카페로 몰아넣었다. 목요일 저녁 영화를 보고 관객과의 대화에 참가했으며, 오늘 저녁 세미나에도 참가했다고 했다. 새벽까지 이야기는 끝이 나지 않았다. 대학로에서, 동경에서, 애들레이드에서, 방콕에서 이런 수다로 시간 가는 줄 몰랐던 내 젊은 날이 떠올랐다. 전 세계 시네필들의 기묘한 연대.
나는 낭시에서도 새로운 영화 친구들을 사귀었다. 다음 도시에서는 또 어떤 일이 벌어질까 ?
강창일
파리 8대학 연극영화 박사, 파리 10대학 비교문학 연구자, 무성영화 변사. 프랑스 방방곡곡을 누비며 강연회와 상영회를 통하여 한국영화를 알리고 있다. 저서로는 « Les Débuts du Cinéma en Corée »(Ocrée Editions, 2021), « Le Cinéma Coréen Contemporain : A l'Aube de Parasite »(Ocrée Editions, 2023)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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