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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파리에 살아야 할 몇 가지 이유 Ep.19 - <말하자면 국밥 같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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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5-01-14 05:01 조회 16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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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 정착했을 때, 나는 늦깎이 대학생이었다. 당시 나는 매우 진지한 견습생의 자세로, 걷고 숨 쉬는 방법마저도 새로 배울 준비가 되어있었다. 내게 프랑스는 주관적인 경험조차 평가하며, 모든 기술에 이름을 붙여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리는 나라였다. 미처 예술가가 되지 못한 이들은 비평가가 되어, 잘난 것과 못난 것을 신나게 논한다. 


식탁 위에서도 예외는 없었다. 먹고 마시는 일은 숨 쉬듯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배우지 않으면 중년이 되어서도 남의 추천이나 권위를 내세우는 잡지 가이드에 의존하게 될 것 같았다. 그러나 먹고 마시는 법을 배운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특히 늘 새로운 것을 맛보기 위해서는 재정적인 여유가 필요했지만, 그 여유는 좀처럼 허락되지 않았다. 


송금을 기다리는 대학생 시절에도, 주머니 사정이 들쑥날쑥한 프리랜서 작가였을 때도, 내달 월급을 기다리는 지금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주변에는 4시간의 식사에 전 재산을 쏟아붓고, 다음 수입이 들어올 때까지 통조림 콩으로 연명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을 사치스럽다고 비난할 수 없었다. 음식을 통해 프랑스와 연결되고자 한 간절 한 몸부림이었으니까. 


절제에 지나치게 익숙해지는 것도 곤란하다. 신을 만나기 위해 굳이 파리까지 찾아올 필요는 없으니까. 파리에 비용의 장벽 없이도 서양 음식의 본질을 탐구할 기회를 주는 장소가 하나 있다. 


100여 년 전 파리에서 처음 탄생한 부이용(Bouillon) 레스토랑이다. '육수'를 뜻하는 부이용은 상품가치가 없던 내장이나 부속물을 활용해 만든 수프를 저렴하게 제공하던 데서 시작되었다. 노동자와 서민들이 즐겨 찾던 이 프랑스식 국밥집은 20세기에 들어서며 메뉴가 한층 더 다양해졌고, 부르주아와 예술가들도 찾는 대중문화의 중심지가 되었다. 


생채소 샐러드, 대파 비네거 소스 요리, 마요네즈 달걀 같은 메뉴는 오래 끓인 국물 요리는 아니지만, 프랑스인들에게 마르셀 푸르스트의 마들렌처럼 향수를 자극한다. 할머니의 집밥을 떠올리게 하는 전채, 메인, 디저트를 모두 포함한 식사를 20유로 대면 즐길 수 있다. 


한국에서 서양 음식을 떠올릴 때, 경양식 돈가스 와 세 가지 아뮤즈 부쉬(Amuse-bouche)로 시작하는 고급 코스 요리 사이에 자리한, 이전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던 서양 음식의 유산이 여기에 담겨 있다. 이 공백 때문일까? 프랑스 음식이란 무엇인가? 이탈리아 음식과는 무엇이 다른가? 


뻔하지만 답하기 쉽지 않은 이 질문을 자주 받는다. 프랑스 음식이란, 결국 프랑스 사람들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음식이다. 세계대전 이후 수백 개의 부이용이 미국식 그릴룸으로 대체되었지만, 1896년에 설립된 부이용 샤르티에(Bouillon Chartier)는 유일하게 그 명맥을 이어왔다. 예약을 받지 않는 덕에 셀 수 없을 만큼 긴 줄이 건물 안팎을 항상 가득 메운다. 뱀처럼 길게 늘어선 줄을 따라 들어가면, 개업 당시 최고조에 달했던 아르누보(Art Nouveau) 양식으로 꾸며진 웅장한 홀과 마주하게 된다. 


높은 천장에 매달린 샹들리에들이 넓게 드리우는 빛 아래로 구리로 된 모자 선반, 나이를 알 수 없는 목재 가구, 빨간색과 흰색이 교차된 테이블 보가 자리하고, 검은 정장에 나비넥타이까지 맨 웨이터들이 놀라운 손놀림으로 빠르게 홀을 누빈다. 


과연 19세기말 프랑스의 짧지만 찬란했던 과거, '벨 에포크(Belle Époque)'의 낙관적인 아름다움이 여기에 있다. 여전히 다양한 계층과 직업, 국적의 사람들이 좁은 테이블에 어깨를 맞대고 앉아, 마치 졸라의 소설 속 시장 풍경 같은 생생한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단순히 레트로풍의 과거를 재현하는 것이 아니다. 최근에는 대형 몰에도 입점하며 새로운 유행을 주도하는 부이용은, 현재 진행형인 파리의 문화 현상이다. 


흔히 '우리가 먹는 것이 곧 우리 자신이다' 라는 말처럼, 효율적이거나 장식적이기만 한 음식에 치여 자기다움을 잃어가는 사람들이 많아서일까. 혹은, '국물도 없는' 뻑뻑한 사회에서 잉여분도 버리지 않고 포용하던 인정이 그리워진 탓일까. 


< 파리광장 /윤영섭 0718sam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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