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파리에 살아야 할 몇 가지 이유 Ep.18 - 오직 파리만이 로마에 걸맞다
페이지 정보
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4-12-17 05:31 조회 458 댓글 0본문
파리에 정착한 지 7년 만에, 나는 마침내 로마의 레오나르도 다 빈치 공항에 발을 내디뎠다.
어릴 적 유럽 대륙을 상상하며 꿈꾸 던 첫 번째 목적지가 바로 이곳이었다. 언젠가, 반드시 가야만 하는 곳, "모든 길 은 로마로 통한다"라고 하지 않았던가. 방문 계획이 미뤄질 때면, 부흥과 멸망을 거듭한 '영원의 도시'가 결코 쉽게 변할리 없다며 나를 위로했다.
비록 폐허일지라도 로마와 비교될 곳은 없으리라는 믿음이 있었다. 며칠 동안 돌길인지 잔해인지 모를 길을 따라, 고대 유적지에서부터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의 흔적을 따라 도시 곳곳을 걸었다.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를 아우르는 광대한 제국이었던 로마와, 오늘날 이탈리아의 행정 수도인 로마를 단순히 비교할 수 없단 걸 안다. 그러나 부단한 노력에도 로마 속에서는 로마를 찾을 수 없었다.
찬란했던 고대 로마의 유산은 이제 역사적 기념물에 불과했을까. 바티칸과 시스티나 성당, 콜로세움, 판테온, 포룸 로마노에는, 잠시 스쳐가는 사람들로만 가득했다. 한때 모든 것의 주인이었다는 로마인은 어디에도 없었다.
로마의 영원성은 오래전 부터 주장되어 왔다. 로마 의 '건국기(AUC)'와 예수의 탄생을 기준으로 한 '서기 (AD)'를 통해 전 세계가 시간의 흐름을 기념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는 과한 대우가 아니다.
더불어, 세속적인 것과 성스러운 것의 경계를 상징하 는 바티칸은 영원한 장소에 대한 신빙성을 제공한다. 영원성이란 단순히 오래된 시간만을 의미 하지 않는다.
전 세계의 수도이자 유럽 도시들의 어머니로 불렸던 로마의 유산은 로마를 넘어서서 존재한다. 기원전 1세기, 갈리아로 불린 지금의 프랑스도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정복한 로마 제국의 일부였다. 이곳에 로마의 문화, 언어, 법률 체계가 깊게 뿌리내렸다.
원형 경기장, 극장, 공중목욕탕 등 로마 시대의 유적은 지금도 프랑스 전역에 남아있다. 프랑스에서 로마의 흔적을 대하는 태도는 침략과 지배의 아픔을 기억하는 것과는 다르다. 로마가 그리스인들의 문화적 업적을 모방하고 정교화하여 자신만의 것을 만들어 냈듯, 파리는 로마가 추구했던 관능적 문화와 예술을 도시 속에 흡수하며 발전시켰다.
근대사에서 가장 프랑스를 가장 프랑스답게 만들었던 태양왕 루이 14세와 황제 나폴 레옹을 기념하는 베르사유 궁전 앞 기마상과 방돔 광장의 기둥 동상에서 이들은 모두 로마 황제의 복장을 입고 있다.
파리 5구, 소르본 대학교 맞은편 사무엘 파티 광장에는 로마의 기원을 상징하는 늑대 의 젖을 먹는 쌍둥이 아이 동상이 서 있다.
1956년 1월 30일, 공식적으로 체결된 두 도시의 독특한 자매결연을 기념하는 의미로 로마가 이 청동 조각을 재현해 파리에 기증했다. "오직 파리만이 로마에 걸맞고, 오직 로마만이 파리에 걸맞다"라는 협정의 슬로건은 이 특별한 관계를 잘 보여준다. 다른 대도시들이 여러 도시와 자매결연을 맺는 것과 달리, 파리와 로마는 서로에게만 헌신하는 단 하나의 관계를 선택했다.
영원의 도시 로마가 빛의 도시 파리만을 자신의 유일한 혈육으로 인정한 것이다. 예술 교류를 제외하고는 알려진 혜택이 거의 없는 이 자매결연을 통해 분명히 드러나는 사실 하나는, 정치와 국가의 권력이 더 이 상 로마의 관심사가 아니라는 점이다. 이탈리아는 이미 한번, 고대 로마 정신으 로의 회귀를 일컫는 르네상스 시기를 통해 미술, 건축, 기록물 등의 예술 속에 스스로를 가두어 부활과 영생을 다시 도모한 바 있다. 『변신 이야기』로 유명한 로마 제국의 시인 오비디우스는 "오직 예술을 통해서만 영원히 살 수 있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과연 로마가 시간의 흐름을 견뎌낸걸까?
나는 작은 엽서나 기념품 하나 사지 못한 채 무덤처럼 정지된 로마를 떠났다. 어쩌면 아직 붕괴되지 않은, 생동하는 로마가 파리 에 있다고 상상하면서...
<파리광장 / 윤영섭 0718samo@gmail.com>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