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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프랑스 '빈민 구제의 아버지'라 불리던 피에르 신부, 최근 밝혀진 그의 추악한 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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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4-09-17 07:35 조회 95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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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가톨릭의 신부이자, 국회의원을 역임한 정치인이자 빈민구제운동에 헌신했던 성직자로, 프랑스 현대사에서 가장 존경받은 인물인 '피에르 신부(l'abbé Pierre)'. 그가 사망한지 17년이 지난 지금 그가 여러 여성들을 상대로 성추행을 저지른 증언들이 잇따르고 있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레지스탕스 활동에 가담하기 시작하면서 아베 피에르(L'abbé Pierre)로 불리기 시작했다. 당시 유대인들을 스위스로 피신시키는 일에 앞장서기도 했다. 1945년 하원의원으로 당선되어 의원 생활 중에는 월급 전액을 빈민활동에 썼고, 1954년 노숙자들의 숙소를 짓기 위해 엠마우스(Emmaüs) 재단을 세워 종교를 초월한 빈민, 노숙자 등 사회적 약자들을 구제하는 사회운동에 일생을 바쳤다. 1988년에는 엠마우스 운동을 더 확산시키기 위해 본인의 이름을 딴 '아베 피에르 재단'을 설립하였다.


프랑스인을 상대로 '위대한 프랑스인', '가장 존경받는 프랑스인' 설문조사를 할 때 샤를 드 골과 함께 가장 먼저 언급되는 인물 중 한 명이다.


피에르 신부는 2007년 선종했다. 그로부터 17년이 지나고 최근 그에게 성추행을 당했다는 여성들의 증언들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지난 7월, 피에르 신부가 1970년에서 2005년 사이 7명의 여성들에게 성폭행 또는 성희롱으로 간주될 수 있는 행동을 했다는 증언이 있었다. 이들 중 한 명은 당시 미성년자였다고 한다. 현재까지 밝혀진 것에 의하면, 여성 20여명의 증언이 있었다.


피에르 신부는 자신의 행위를 폭로하려는 사람들을 위협했던 때가 있었다고 라디오 프랑스가 입수한 미공개 편지를 통해 밝혔다. 그가 성폭력 혐의에 맞서 자신을 방어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사실을 폭로하려는 사람들에게 압박을 가하거나 위협을 가했던 것으로 전해지면서, 자신의 명성과 권위를 이용해 문제를 덮으려 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프랑스 주교회의(CEF)는 지난 9월 12일(목), 피에르 신부와 관련된 모든 기록을 즉시 열람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는 일반적으로 사망 후 75년의 기한을 기다리지 않고 이루어지는 조치로, 프랑스 주교회의는 이를 통해 모든 진상을 밝히고자 한다고 했다.


‘침묵과 은폐’, 바티칸은 알고 있었다.

교황 프란치스코는 아시아 순방 후 돌아오는 길에 기자들에게 바티칸이 에마우스 창립자인 아베 피에르(L'abbé Pierre)의 성폭력 혐의에 대해 수년 전부터 알고 있었다고 인정했다고 일간지, 르몽드(Le Monde)는 전했다. 교황은 피에르 신부의 사후에 이 같은 사실에 대해 보고를 받았다고 밝혔다. 교황은 이러한 문제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명하며 교회가 이러한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 더 적극적이고 투명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에 대한 성폭력 혐의가 공개된 후 아베 피에르 재단은 지난 9월 6일 이름을 변경하기로 결정하고 이를 위한 절차를 시작했다고 발표했다. 이후 프랑스의 거리, 정원 등에 붙여진 아베 피에르라는 이름을 모두 바꾸기로 했다.

일간지, 르몽드(Le Monde)는 아베 피에르와 "엠마우스의 비밀"에 대한 조사가 진행되면서 많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고 하면서, ‘침묵과 은폐’가 195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했다.


<파리광장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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