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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이재형 작가 <프로방스 여행> 연재(23)-작품 전체를 기증하여 건립된 마티스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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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4-08-13 08:35 조회 79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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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광장은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이재형 작가의 프랑스 르퓌 산티아고 순례길 저서

<프랑스를 걷다>와 <나는 왜 파리를 사랑하는가>연재 이후, 

<프로방스 여행-내 삶이 가장 빛나는 순간으로>연재합니다.

연재를 허락해 주신 이재형 작가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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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스의 마티스 미술관


앙리 마티스(1869~1954)는 1917년 처음으로 니스에 왔다. 프로방스의 맑고 투명한 빛에 매료된 그는 니스에서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살다가 결정적으로 시미에 언덕에 자리를 잡았다.

그는 지금 시미에 수도원(Monastèe de Cimiez) 공원묘지의 수수한 무덤 속에 잠들어 있다.

그는 1954년 세상을 떠나기 직전에 자신의 작품 전부를 니스시에 유증했다. 니스시는 17세기에 건축된 아렌느 빌라를 마티스 미술관(Musée Matisse Nice)으로 만들고 마티스가 유증한 작품들을 중심으로 전시 목록을 구성하였다. 관람객은 회화 작품뿐만 아니라 데생과 판화, 조각 작품을 통해서도 그의 예술 세계를 이해할 수 있다.

이 작품 중에는 〈노란색 책상에서 책을 읽는 여인〉(1944)이라든가 〈로카이유 양식의 안락의자〉(1946), 〈석류가 있는 정물〉(1947), 〈푸른 누드 IV〉(1952) 같은 걸작이 포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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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미에 수도원에 있는 마티스의 무덤


마티스는 1941년 결장암 수술을 받고 6개월밖에 살지 못할 것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그는 구속복을 입고 침대에 누워 지내야 했다. 그 바람에 더 이상 그림을 그릴 수 없게 되었지만, 예술에 대한 열정은 결코 식지 않았다. 13년 동안 이어지게 될 쿠파주(나무나 금속, 유리 표면에 그림을 오려 붙여서 그림을 그린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기법)와 과슈화의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이 색종이 작업은 그가 평생 추구해온 ‘형태의 단순함과 색채의 강렬함’이라는 미학의 완성판이라 할 수 있다.


1952년 레지나 아틀리에에서 그린 〈푸른 누드 IV〉는 ‘푸른 누드’ 시리즈 네 작품 중 하나다. 그런데 〈푸른 누드 I〉과 〈푸른 누드 II〉, 〈푸른 누드 III〉은 단 한 번의 가위질로 완성된 반면 〈푸른 누드 IV〉는 시간을 두고 그려졌다. 그래서 이 작품에는 연필 자국과 과슈 조각들을 맞춘 흔적들이 남아 있다.


과슈 조각의 강렬한 푸른색은 바다의 색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다. 이 독특한 푸른색은 마치 어떤 사람이 징소리가 들리면 하던 일을 중단하고 주의를 기울이는 것처럼 관람객이 새로운 미학적 관점으로 이 작품을 바라볼 수 있게 해준다. 이 작품에서 푸른색 단일 색조는 흰 공백에 의해 분리되고, 이 같은 분리에 의해 모델의 포즈는 한층 더 강조된다.


샤갈의 성서 이야기 미술관

마르크 샤갈(1887~1985)의 삶을 셋으로 나눈다면, 1948년에서 그가 세상을 떠난 1985년까지 마지막 세 번째 기간은 흔히 ‘지중해 시대’로 불린다.

1950년 샤갈은 방스에 있는 라 콜린 별장에 자리 잡는다. 이 시기에 접어들면서 그는 공식적으로 인정받게 된다. 전시회와 회고전이 점점 더 자주 열렸으며 주문도 밀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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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스에 있는 샤걀의 성서 이야기 미술관 


아라공의 시집과 《오디세이》에 삽화를 그렸고, 니스 대학 건물을 모자이크로 꾸몄으며, 이스라엘 국회에 걸릴 장식 융단을 만들었다. 또한 런던의 워터게이트 극장과 프랑크푸르트 극장,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극장, 파리의 오페라 극천장을 장식했으며, 사르트르와 랭스, 메츠, 예루살렘 등지에서 새로운 형태의 스테인드글라스 작업을 했다.

이 기간에 샤갈은 ‘성서 연작’을 그리겠다는 계획을 구체화한다. 이 주제는 이미 오래전부터 그의 작품 세계에 자리 잡고 있었다. 1930년과 1931년 팔레스타인을 여행할 당시 볼라르가 주문한 삽화를 준비하기 위해 그린 불투명 수채화들은 〈성서 이야기〉의 초벌 그림으로 쓰이게 된다. 〈다윗왕과 율법 판을 받는 모세〉, 〈홍해 횡단〉, 〈율법 판을 깨는 모세〉는 1950년과 1952년 사이에 그릴 연작을 예고하는 최초의 작품들이라 할 수 있다. 그는 10년이 넘도록 끈질기게 작업을 하면서 이 계획을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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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폴에 있는 샤갈의 무덤


잉크와 불투명 수채물감, 특히 파스텔을 사용한 데생은 서술 주제를 천지창조와 모세 5경, 아가에서 빌어온 이 작품이 서서히 완성되어 가고 있음을 증명해 준다.

드디어 1973년, 성서 이야기 미술관(Musée National Marc Chagall)이 니스에서 문을 열었다. 올리브나무들 사이에 자리잡은 이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는 샤갈의 작품 17점은 〈인간의 창조〉에서부터 〈홍해 횡단〉에 이르는 선민의 영웅적 행위를 이야기하고, 〈아가〉가 이 서사시를 완성한다.

이 연작을 보면 샤갈이 항상 종교적 영감을 느끼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중세의 위대한 작품군(群)을 연상시키는 벽화의 차원을 이 작품에 부여하는 재능까지 갖추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프랑스에 기부된 이 연작은 샤갈의 영적이며 예술적인 유언이라 할 수 있다.

그는 1985년 생폴드방스에서 세상을 떠났다.


<글 사진: 이재형 작가>


1, 이재형 작가와 함께 하는  "파리구석구석 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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