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 기메 박물관 (Musée national des Arts asiatiques – Guimet)과 한국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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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4-07-06 05:01 조회 896 댓글 0본문
프랑스에 도착한 최초의 한국인- 1889년 기메 박물관 마침내 문을 열다
파리ㅡ기메박물관, 11월 20일 개관식 장면 (1889년 11월 30일 주간지 L'Univers illustré에 실린 기사 삽화) [1]
1889년 프랑스는 만국박람회를 개최하여 파리의 엠블럼이 될 에펠탑을 중심으로 전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었고, 바로 같은 해 1989년 11월 20일 에밀 기메(Émile Guimet)가 자신의 이름으로 기메 박물관을 개관한다. 아래는 1889년 11월 30일 <L'Univers illustré> 라는 주간지에 실린 개관식 기사이다 :
« 프랑스 대통령이 참가한 가운데 1889년 11월 20일 오후 두 시에 기메 박물관의 개관 기념식이 있었다… 기메 박물관은 루브르, 뤽상부르그 공원, 베르사이유 궁전 등 국가가 관리하는 공공장소로서 입장료는 무료이고 월요일을 제외한 모든 요일에 문을 연다…부지는 파리시가 제공하고 건축 및 건설비용은 파리시와 에밀 기메(Émile Guimet) 씨가 반씩 부담하였다…»[2]
이집트 여행에서 그곳의 풍경과 인물의 이미지를 담지 못하여 아쉬워하던 에밀 기메(Émile Guimet), 그리고 파리 코뮌에 연루되어 망명 생활을 하던 펠릭스 레가메이(Félix Régamey)는 일본과 중국, 동남아시아 그리고 인도를 탐험하면서 그린 방대한 양의 풍경과 인물들의 스케치 그림을 가지고 마치 승전군대의 사령관들처럼 파리의 개선문을 통과한 두 사나이는 프랑스 사교계의 핵심인물이 되었고 마침내 1889년 기메 박물관이 개관하면서 그들 명성의 정점을 찍는다.
그런데 몇 달 뒤 홍종우란 이름의 최초로 프랑스에 도착한 한국인이 그들을 찾아왔다. 당시의 상황을 펠릭스 레가메이 (Félix Régamey)가 글로 남겼다.
« Lorsque Hong Tyong-ou pénétra pour la première fois dans mon atelier, il n’était que depuis quelques jours à Paris et ne savait pas un mot de français. 홍종우가 처음으로 나의 작업실을 찾아왔다. 그가 파리에 도착한 지 며칠밖에 되지 않았을 때였다. 그는 단 한마디의 프랑스어도 하지 못하였다… Les pères de Chine n’ont pas compris un mot du discours du Coréen 파리 외방전교회 (Missions étrangères de Paris, ME)의 중국지역 파견 천주교 신부들은 그의 한국어를 한마디도 이해하지 못했다…»[3].
펠릭스 레가메이 (Félix Régamey)는 한 일본인에게 통역을 부탁하였는데 홍종우는 일본어를 구사했다. 두 동양인이 대화를 하는 동안 작업실에는 긴장감이 맴돌았다. 그것은 아마도 둘 간에 양국의 정치적 태도에 대한 대화가 시작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 당시 한반도의 상황은 어떠하였을까 ? 19세기, 서양의 제국주의가 아시아에 도착할 무렵, 한반도와 일본을 포함한 아시아 지역은 쇄국정책을 펴고 있었다. 일본은 미일 수호 통상 조약(1858)을 맺으면서 마침내 나라의 문을 완전히 열게 되었는데 치외 법권, 협정 관세(관세 자주권 포기), 최혜국 대우 등을 인정한 불평등 조약을 맺게 되었다. 이때 배운 혹독한 힘의 논리, 즉, 서양의 제국주의를 일본은 한반도를 포함한 아시아에서 재현할 것이다 : 조일수호조규 또는 강화도 조약(江華島條約)이라 불리는 일본과 조선(한국)간의 불평등 조약(1876)은 다름 아닌 미국에 당하였던 제국주의의 경험을 일본이 조선에 그대로 응용한 한 예이다.
메이지 정부는 막부를 타도하고 천황 중심의 새로운 정권을 세우는 왕정복고에 성공하여 중앙 집권 체제를 구축하였고 부국강병과 서양식 산업부흥을 목표로 서양의 근대 국가를 모델로 삼는 문명 개화정책을 추진하는데 (메이지 유신, 1868) 메이지 정부는 봉건제를 폐지하고 의무 교육제를 도입하고 신분제를 폐지하며 근대적 군대를 육성한다. 서양의 기술을 도입하고 우편, 철도, 은행, 공장을 설립하고 상공업 육성에도 힘을 기울여 적극적인 경제 발전을 추진하면서 일본은 서양 제국주의에게 당한 굴욕을 극복하고 서양제국주의에 맞먹는 아시아의 제국임을 증명하려는 노력을 시작하면서 한반도를 정벌하자는 주장인 정한론이 대두된다.
메이지 유신이라는 이름의 이러한 일본의 커다란 변화에 조선(한국)인들은 다양한 생각과 반응을 하였을 것이다. 어떤 이들은 일본에 도착한 서양의 문물을 신기해하고 더불어 부러워할 것이고, 어떤 이들은 일본이 서양제국주의의 팽창전략을 따라하여 한반도를 점령 및 수탈할 것을 걱정하고, 또 어떤 이들은 조선의 고약한 신분제로 공직시험(과거)조차 응시하지 못하였던 터라 메이지 유신이 신분제를 폐지한다는 소식에 아예 일본으로 떠나 지긋지긋한 조선에서 해방되고자 하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다양하고 복잡한 생각은 프랑스에 도착한 최초의 한국인 홍종우에게도 있었을 것이다.
펠릭스 레가메이 (Félix Régamey)는 파리 자신의 작업실에 도착한 최초의 한국인을 바라보면서 에밀 기메(Émile Guimet)와 아시아 탐방 중 싱가포르에서 보았던 철살장에 갇혀 포효하는 커다란 호랑이를 떠올렸다. 아시아 문화를 알리는 최전선 선봉장들인 에밀 기메(Émile Guimet)와 펠릭스 레가메이 (Félix Régamey), 이 두 사나이는 파리에 막 도착한 최초의 한국인 홍종우, 한반도에서 온 이 무서운 호랑이와 무슨 일을 벌릴 것인가 ?
다음호에 계속
강창일 : « 연극영화 »박사 (프랑스 파리 8대학), « 비교문화 »연구자 (파리 10대학), « 무성영화 »의 변사*
* 저서:
Chang-il Kang, Les débuts du cinéma en Corée, Roquebrune-Cap-Martin, Ocrée Editions, 24 septembre 2020, 253 p. ISBN 979-10-96382-14-9
Chang-il Kang, Le cinéma coréen contemporain : A l'aube de Parasite, Roquebrune-Cap-Martin, EDITIONS OCREE, 2023, 192 p. ISBN 979-10-96382-4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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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출처 Source : 프랑스 국립도서관, BNF, Bibliothèque nationale de France, département Philosophie, histoire, sciences de l'homme, FOL-LC2-2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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