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이재형 작가 <프로방스 여행> 연재(18) -카뉴쉬르메르(Cagnes-sur-Mer) :르누아르의 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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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4-06-25 07:56 조회 1,154 댓글 0본문
파리광장은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이재형 작가의 프랑스 르퓌 산티아고 순례길 저서
<프랑스를 걷다>와 <나는 왜 파리를 사랑하는가>연재 이후,
<프로방스 여행-내 삶이 가장 빛나는 순간으로>연재합니다.
연재를 허락해 주신 이재형 작가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인상파의 대가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1841~1919)는 그의 생애 말기 11년을 카뉴쉬르메르(Cagnes-sur-Mer)에 있는 콜레트 저택에서 보냈다(카뉴쉬르메르에서는 1903년부터 살았다). 이 도시의 높은 언덕에 자리 잡은 이 집은 프로방스의 숨은 보물이라고 할 수 있다.
지중해를 따라 뻗어 있는 이 도시의 아랫동네는 주변의 많은 도시들이 그렇듯 1960년대에 전쟁을 피해 식민지 알제리를 빠져나온 프랑스인들을 받아들이기 위해 급히 조성되었다. 이 동네는 경마장과 속보 경기로 널리 알려져 있기는 하지만 특별히 볼만한 것은 없다.
저택의 르누아르 아틀리에
하지만 중세 때 생겼으며 높은 언덕에 걸터앉아 있어 주변 어디서나 보이는 윗동네는 매우 아름답다. 1948년 역사보존 지역으로 지정된 이 동네에 그 이후 스웨덴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들이 오래된 집을 사들여 보수하고 개인 주택이나 호텔로 만드는 바람에 비록 옛 모습이 많이 사라지긴 했지만, 이 동네에는 여전히 성이 있고, 역사가 새겨진 돌이 있고, 포석이 깔린 좁은 골목이 있고, 지중해가 훤히 내려다 보이는 전망대가 있어서 고즈넉한 시간을 보내기에 좋다.
□ 르누아르가 마지막까지 그림을 그린 집
지금은 르누아르 미술관(Musée Renoir)으로 바뀐 콜레트 저택은 이 윗동네에 자리 잡고 있다. 기차역에서 르누아르 미술관까지는 30분가량 언덕길을 낑낑거리며 올라가야 한다. 하지만 미술관 정원에 서면 저 멀리 올리브나무 사이로 올려다보이는 그리말디성과 저 아래 내려다보이는 카뉴쉬르메르 마을, 푸르른 지중해 풍경이 땀을 식혀준다.
의사들은 르누아르가 다발성 관절염에 걸려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자 최대한 많은 시간을 프로방스에 머무르라고 권유했다. 수틴이나 드랭, 발로탱 등 많은 화가들처럼 르누아르 역시 프로방스의 빛에 매혹되었다.
르누아르의 조각상 <승리의 비너스>
그는 100년이 넘게 산 올리브나무들로 둘러싸인 콜레트 저택을 지어 생을 다할 때까지 11년 동안 이곳에서 아내 알린, 아들 클로드와 함께 살았다. 3ha 넓이의 집은 올리브나무와 자두나무로 둘러싸여 있고, 집 안으로 들어가면 초상화와 누드화, 정물화, 그리고 신화 장면들을 그린 작품 16점과 30여 점의 조각, 그가 사용한 가구와 아틀리에를 볼 수 있다. 이 시기에 그린 작품들의 색채는 눈부시고 현란하다. 터치는 물 흐르듯 유연하고 투명하며, 여성들의 나신은 둥글둥글 풍만하고 관능적이며, 생명력으로 넘친다.
□ 르누아르의 회화적 유언 〈목욕하는 여자들〉
40대에 접어든 르누아르는 경제적으로 매우 궁핍한 데다가 비평가들도 그의 작품에 호의적이지 않았다. 그는 성공을 거두기 위해 인상파전에 더 이상 참여하지 않고 살롱전에 작품을 출품하기로 마음먹는다. 그리하여 〈뱃놀이하는 사람들의 점심〉(1881), 〈도시에서의 춤〉과 〈시골에서의 춤〉(1883)에서는 윤곽선이 강조되고 대비가 이루어지는 등 선의 효과가 분명하게 나타난다.
1881년 가을 르누아르는 로마를 찾는다. 바로 여기서 그의 화가로서의 경력에 결정적인 전환이 이루어진다. 라파엘의 작품(특히 바티칸궁의 라파엘의 방에 그려진 그림들)을 본 그는 자신의 ‘인상파 시대’를 완전히 끝내고 고전적인 ‘앵그르 시대’로 접어든다. 이 시대를 대표하는 작품이 바로 〈목욕하는 여인들〉이다.
르누아르의〈목욕하는 여자들〉
베르사유궁 정원에 있는 지라르동의 〈님프들의 목욕〉(1672) 청동 부조에서 영감을 얻은 이 작품의 전경에는 벌거벗은 두 여성(두 사람 중 앞에 있는 여성의 모델은 르누아르의 둘째 아들 장 르누아르의 첫 번째 부인이었던 영화배우 카트린 에슬렝이다)이 누워 있고, 후경 오른쪽에는 역시 벌거벗은 3명의 여성이 물속에서 놀고 있다.
르누아르는 올리브나무가 서 있는 이 지중해의 풍경을 콜레트 저택에서 그렸다. 말년에는 그가 선호한 주제 중 하나인 여성의 누드를 집중적으로 그렸는데, 이 작품은 그중 하나다. 그는 여기서 자신이 현재 살고 있는 세계를 상기할만한 소재를 일체 등장시키지 않고, 시간을 초월하여 영원히 같은 모습으로 존재하는 자연을 찬양한다.
그는 이 작품을 그리며 ‘땅은 신들의 낙원’이라고 생각했던 이탈리아와 그리스의 고전적 전통을 되살렸다. 이 같은 목가적 관점은 관능적인 모델들과 다양하고 풍성한 배색, 충만한 형태로 표현되었다. 어쩌면 르누아르는 이 작품을 그리면서 말년의 병과 고통을 이겨냈는지도 모른다.
르누아르는 이 작품을 그리고 나서 세상을 떠났다. 〈목욕하는 여자들〉은 르누아르의 회화적 유언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세 아들은 1923년 이 작품을 국가에 기증했다.
<글 사진: 이재형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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