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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 ‘씨앗 뿌리는 마음’ - 고 이철종 전 한인회장이 한인사회에 남긴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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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4-05-07 05:06 조회 2,414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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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종 전 한인회장 장례식에서 - 2024년 5월 2일 파리 인근, 클라마르(Clamart)


씨앗 뿌리는 마음이라는 글귀는 파리의 한림식당에 자주 갔던 이들은 알 수 있을 것이다. 한림식당 벽에 걸린 액자에 붓글씨로 쓰여진 글귀다

1981년 개업을 해서 43년 동안 프랑스에 우리 한식을 알려온 한림식당은 얼마 전에 문을 닫았다. 이제 파리 한림식당은 더 이상 없다. 깐풍기와 짜장면, 얼큰한 한림식당의 김치찌개는 더 이상 맛볼 수 없다. 자주 가지는 못했지만, 그 소식에 적쟎이 섭섭했다

단순히 한식당 한곳이 문을 닫았다는 그 이상으로 와닿은 건 무슨 이유일까 ?... 그건 아마 녹록잖은 외국 생활에 향수를 달래주는 마음의 음식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림식당을 설립한 이철종 전 한인회장의 별세 소식을 들었다. 한인사회의 큰 어른을 잃었다.

이철종 전 한인회장은 4월 23 12시경 91세의 일기로 별세했고, 427일 고인이 기금을 모아 구입, 개관한 한인회관에 빈소가 마련되었으며, 5 2일 파리 인근, 클라마르(Clamart)에서 유가족들과 한인 및 프랑스인들이 참석한 가운데 마지막 예식을 치르고 영원히 떠났다.

20년 전 고인의 삶의 이야기가 담긴 책, <파리의 요리사, 이철종 이야기>를 받고는 단숨에 읽어 내려갔던 기억이 있다. 항상 먼발치에서만 뵈었던 분의 이야기라 단순히 재미있게 읽었다.

그리고 이번에 책장 깊숙이 꽂혀 있던 고인의 책을 꺼내어 먼지를 닦아내고 다시 읽었다

20년 전 책을 처음 대할 때와는 다르게 마음이 가볍지만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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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년 동안 프랑스에서는 K-콘텐츠 붐이 일어나 한국의 위상은 많이 높아졌고, 고인이 자체 건물을 가지기 위해 기금 모금 운동을 했던, 당시 프랑스에서 유일했던 한글학교는 이제 프랑스 전역에 퍼져 있어, ‘파리한글학교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고인은 21대와 22대 한인회장을 역임했고, 현재 파리 15구에 있는 한인회관은, 한인들이 모일 공간이 없던 시절에 고인이 한인회관 건립기금을 위한 전시회를 개최하면서 1994년 구입, 개관했으며, (파리)한글학교 건물 구입을 위한 기금 모금 운동을 벌였다.

이철종 회장의 한인사회 활동의 기원은 198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파리의 요리사, 이철종 이야기> 에서, 어느날 대사관에서 표창장을 받으러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고 한다: '내가 표창을 받을 일을 한 적이 없는데 무슨 표창장이냐면서 나는 받을 자격이 없다고 하였더니, 식당에서 신세를 지고 간 많은 유학생들로부터 추천이 들어와 대사관 직원 전원의 찬성으로 결정되었으니 기분 좋게 받으라고 하였다. (중략) ‘학생들에게 음식을 팔 때 양이 차지 않을 것 같으면 밥 한 그릇 거져 주는 것은 영업 전략상으로도 당연하고, 또 내가 배고팠던 적을 생각하면 그 정도 베푸는 것은 당연한데, 그것이 무슨 공로라고 표창을 다 받는단 말인가. 기쁨보다는 부담스러운 생각에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훗날 언젠가 표창을 받은 대가를 해야겠다고 다짐하며 꺼림칙한 마음을 애써 지웠다.'

그렇게 고인의 마음 속에 씨앗이 움트고 있었으리라. 이철종 전 한인회장의 여러 업적 중 빠질 수 없는게 한글학교 건립 모금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1989년 정부의 해외 유학 자유화 정책으로 유학생이 늘어나면서 한글학교 학생수가 늘어났다. 재정 열악으로 프랑스 학교에서 시간제로 빌려 사용했는데, 우리가 사용하지 않는 시간에는 아프리카 여러나라의 학생들이 들어와 수업을 했고, 이 과정에서 아프리카 학생들이 낙서한 것을 우리 학생들이 고스란히 뒤집어쓰는 등, 그야말로 셋방살이의 설움을 당하면서 한글 교육을 받고 있던 상황이었다.

이에 우리 자체 건물이 절실해서 신재창 박사와 오수연 선생 등과 함께 기금 모금 위원회를 구성하여 출범식을 가지고 한글학교 건물 매입을 위해 정진했다.

 

한인회관, (파리)한글학교 건물 마련을 위한 창구

한글학교 건립 기금 모금을 하던 중에, 파리 한인들의 구심점인 한인회가 정해진 사무실 하나 없이 회장이 바뀔 때마다 전화번호와 주소가 바뀌어 교민들이 불편을 겪고 있는데, 한인회 사무실 하나 마련하지 못하는 형편에서 한글학교를 세우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지적이 있었다.

그래서 한글학교 보다 규모가 작고, 많은 돈이 필요하지 않는 한인회 사무실을 먼저 마련하면, 그 사무실이 한글학교 마련의 창구가 될 수 있겠다는 판단을 한 끝에 설립된 한인회관이었다

이를 고인은 책에서 이렇게 서술하고 있다 : 이로써 한글학교 기금 마련 운동과 발맞추어 한인회관 건립 운동도 함께 추진되었다. 이들 운동은 파리의 많은 교민들을 하나로 결집시키는 중요한 원동력이 되었고, 이 일을 통해 파리의 교민들이 해외에서 우리 민족의 얼을 심고 지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이렇듯 당시 한인회와 (파리)한글학교는 떨래야 뗄 수 없는 하나였다. 고인의 생전 숙원이었던 한글학교 자체 건물은 여러 우여곡절 끝에 마련되지 못했다.

지난 5 2일 이철종 회장의 장례식에서 한매협 (한글학교매입추진협회최윤규 이사장은 추모사를 통해, 이철종 회장님에 대해 한글학교 건물 매입만 말씀하시는데 더 귀한 일은 한글학교 이사장에 취임하시고, 한글학교 이사회를 만들어 학교 운영함에 있어, 학생 수업료와 정부 지원금만으로 부족한 자금을 수십 년 동안 지원한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했다.

또한 지금 그나마 파리한글학교가 편하게 사용하고 있는 파리 13구의 귀스타브 플로베르 중학교로 옮기기 이전에 사용하던 학교에서는 쉬는 시간에 우리 학생들은 운동장에 나오지도 못했다. 왜냐하면 본 학교 학생들 운동에 방해된다는 이유였다.

이 같은 상황을 파악한 교육원에서 학교를 이전해 보려고 밤샘 작업을 하면서 애썼던 이부련 전 교육원장의 노고 또한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현재 파리한글학교가 누리고 있는 모든 것들은 그냥 주어진게 아닌 앞서 간 분들의 헌신적인 노력이 있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옛날 대사가 직접 나서서 이곳 한국 기업 오너들에게 한글학교 이사회로 들어오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파리한글학교는 자생 기관이 아니고 그럴 수도 없다. 그러기에 한인사회와 교류하며 나아가야 한다.  

그리고 고인이 21대와 22대 한인회장을 역임했던 한인회는 이철종 회장의 뜻을 이어 한인사회의 화합을 위해 노력하기를 바란다

한인사회의 발전은 화합 없이는 어려울 것이다.

이철종 회장의 장례식에서 송안식 한인회장은 추모사를 통해 회장님께서 살아오신 삶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서로 돕고, 더불어 살아가라는 교훈으로 남아있다고 했다. 한인회는, 고인이 뜻을 품고 실천했던 것처럼 한인사회에 문제가 있으면 나서서 돕고, 더불어 살아가기를 이어나가기를 바란다.  

그 옛날 척박했던 시절에 고인이 한인사회의 발전을 위해 뿌렸던 씨앗이 탐스럽고 좋은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이제 우리들의 노력이 필요하리라 본다. 이것이 고인이 한인사회에 남긴 과제가 아닐까


장례식영상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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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광장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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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1

Good님의 댓글

Good 작성일

적쟎이 ….. 녹록잖은….
풋…. Old sty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