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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이재형 작가, <나는 왜 파리를 사랑하는가> 연재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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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3-12-19 04:56 조회 2,34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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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사이유 궁 세번째- 베르사이유 궁의 방들



파리광장은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이재형 작가의 프랑스 르퓌 산티아고 순례길 연재를 마치고,  

이재형 작가의 파리 저서, (<나는 왜 파리를 사랑하는가> 2022년 디이니셔티브 출판)를 연재합니다. 

                                                                                       이 모든 것을 허락해 주신 이재형 작가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맨 먼저 풍요의 방(the Abundance Salon)이 나타난다. 실내 파티가 벌어지면 이곳에는 세 개의 식탁이 차려지고, 거기에 금잔과 은잔에 커피나 초콜릿, 각종 음료, 아이스크림, 과일주스, 리모네이드, 얼린 얼음을 가득 담아 올려놓았다. 루이 14세 때는 이 방에 귀중한 예술품을 보관하기도 했다. 


천장 바로 아래 배처럼 생긴 그림이 보인다. 흔히 “왕의 배”라고 부르는데, 왕의 식탁에 올려놓으면 손님들은 저 앞을 지나갈 때마다 절을 해야 했다. 왕을 상징하는 저 술잔 속에는 왕의 냅킨을 넣어두었고, 루브르 미술관의 아폴론 갤러리에 가면 이 술잔을 실제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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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브르 박물관에 있는 루이 14세 술잔


자, 다음은 금성 방(the Venus Salon)이다. 이 방과 바로 옆 달의 방(the Diane Salon)은 원래 두 개의 문을 통해 “대사들의 계단”이라고 불리던 계단으로 이어졌으나 이 계단은 1752년에 없어졌다. 이 방에서는 파티가 열릴 때마다 식탁을 꽃으로 장식하고 그 위에 생과일이나 설탕에 절인 오렌지나 레몬 같은 귀한 과일을 피라미드 모양으로 쌓아 올려놓았다고 한다. 


천장에 그려진 그림은 우아쓰라는 화가가 그린 <신들을 복종시키는 비너스신과 위대한 인간들>이다. 그리고 천장과 벽이 만나는 네 귀퉁이에는 <알렉산더 대왕과 록산느의 결혼>(오른편. 록산느는 알렉산더 대왕의 첫 번째 공식 부인이며 알렉산더 대왕이 진심으로 사랑했던 여성이다)과 <바빌론의 정원 앞에 있는 나부코도노소르와 아미티스>(정면. 나부코도노르소스는 바빌론의 왕이며 아미티스는 그의 아내다), <로마에서 서커스를 주재하는 아우구스티누스 황제>(왼편), <키루스와 만다네>(창문 위. 키루스는 페르시아 왕이며 만다네는 키루스의 어머니다)가 그려져 있다. 


그리고 이 방의 모서리에는 메데아와 이아손,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 테세우스와 아리안느, 티투스와 베레니시아 등 고대의 유명한 커플들이 비너스의 꽃 장식으로 묶여 있다. 입체적으로 그린 그림을 “눈속임” 그림이라고 부른다. 창문 사이의  조각상도  가짜다.


 그 다음은 달(다이애나)의 방(the Diana Salon)이다. 17세기에는 이 방 한가운데 당구대가 있었다. 루이 14세가 당구를 잘 쳐서 “박수갈채의 방”으로 불리기도 했다. 원래 이 방의 양쪽에는 계단석이 있어 귀부인들이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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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이애나의 방에 있는 루이 14세 반신상


이 방에서 주목해야 될 것은 루이 14세의 28세 때 반신상인데, 이태리 조각가 베르니니가 1665년에 조각했다. 그 당시 이태리 최고의 예술가로 간주되었던 베르니니는 루브르궁을 설계해달라는 루이 14세와 콜베르 수상의 부탁을 받고 파리에 왔으나 프랑스 예술가들의 끊임없는 방해에 부딪쳐 결국 1년 만에 이태리로 돌아갔다. 루브르궁의 설계도도 거부당한 그가 프랑스에 남긴 유일한 예술품이 바로 이 조각상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라. 그야말로 걸작이다. 루이 14세는 이 조각을 보면서 크게 감탄했다고 한다.


천장에는 암사슴들이 사냥의 여신인 다이애나가 탄 마차를 끄는 모습을 그린 그림이 있고, 벽난로 위에는 <이피게니아의 희생>이라는 그림이 있다. 


그 다음은 화성의 방(the Mars Salon)이다. 이 방은 원래는 호위병들의 방으로 쓰려 했으나 결국은 전쟁의 신인 마르스의 방이 되었다. 천장 한가운데에는 늑대들이 마르스 신이 탄 마차를 끄는 그림이 그려져 있으며, 이 그림 옆에는 <승리>와 <공포>라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이 방에서 특히 주목할 만한 그림은 샤를 르브룅의 <다리우스의 막사>인데, 왕의 수석화가였던 이 화가는 1660년 루이 14세가 직접 지켜보는 가운데 퐁텐블로 궁에서 이 그림을 그림으로써 왕의 총애를 받게 되었다. 그리고 오른쪽은 베로네세의 <엠마우스의 순례자들>이라는 작품인데, 거의 비슷한 크기의 프랑스 그림과 이태리 그림을 걸어놓은 것은, 이제는 프랑스 회화도 이태리 회화의 수준에 올랐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해서다.


1687년에서 1750년까지는 벽난로 양쪽에 악사석이 있어서 무도회가 벌어지기도 했다. 궁정의 춤은 정해진 엄격한 규칙에 따라 추어야 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여러 번씩 모여서 연습을 했다고 한다. 초상화는 루이 16세다.


그 다음은 수성의 방(the Mercury Salon)으로, 실내 파티를 할 때 카드게임이나 주사위게임 등 여러 가지 게임을 하는 방이었다. 처음에는 부속실이었으나 1682년에 왕의 방이 되었다. 천장에는 장-바티스트 드 샹페뉴라는 화가가 그린 머큐리가 수탉들이 끄는 마차에 타고 있다. 침대 왼쪽에는 매 시간 수탉 다섯 마리가 날개를 치며 울어대면 루이 14세의 조각상이 나타나는 자동장치시계가 있는데, 앙투안 모랑이라는 사람이 만들어서 1706년에 루이 14세에게 선물했다고 한다. 그 당시에는 시계가 매우 귀한 물건이었다.


원래 이 방에는 라파엘이 그린 <용을 쓰러트리는 미카엘 성인>이라는 그림이 걸려 있었으나 루브르 미술관으로 옮겨졌다. 

원래는 게임용 테이블이 있었지만, 전쟁을 치르기 위해 가구들과 함께 녹였다. 침대는 루이 14세의 손자가 스페인 왕으로 가기 전에 3주일 동안 썼고, 루이 14세의 시신을 진열해놓기도 했다.


다음은 아폴론의 방(the Apollo Salon)으로 왕의 공간에서 가장 호화로운 방이다. 처음에는 왕의 방으로 쓰여 루이 14세가 1673년부터 사용했고, 그 뒤에 왕의 공간이 공식행사를 위한 공간으로 탈바꿈하자 왕좌의 방이 되었다. 왕좌의 높이가 2미터 60센티에 달했다고 한다. 무도회장으로 쓰이기도 해서 왕이 왕좌에 앉아 춤추는 광경을 지켜보았다고 한다. 왕은 춤을 아주 잘 추었다고 전해진다. 왕좌는 원래 금으로 되어 있었으나 나중에 금색을 칠한 나무로 바뀌었다. 


천장에는 <아폴론의 수레>라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그리고 오른쪽 벽난로 위에는 우리 눈에 익은 그림 한 장이 걸려 있는데, 리고라는 화가가 그린 <루이 14세의 초상화> 두 번째 버전이다(첫 번째 버전은 루브르 미술관에 있다). 


그림을 좀 더 자세히 감상해보자. 루이 14세는 군주제를 상징하는 여러 가지 물건을 들고 있다. 오른손에는 부르봉 가문의 상징인 백합꽃이 달린 왕홀(왕권의 상징인 지휘봉을 말한다)을 들고 있다. 또 “샤를마뉴 대제의 검”이라고 불리는 축성식 용 검도 보이는데, 칼집에 보석이 박혀 있다. 왕 옆에는 정의의 손과 프랑스 왕관이 금색 백합꽃을 수놓은 방석 위에 놓여 있다.


왕의 아파트에서 맨 마지막에 있는 것은 전쟁의 방(the War Room)으로, 원래는 왕이 국무회의를 열던 방이었다. 둥근 천장에는 백합꽃이 수놓아진 망토를 입은 프랑스가 승리의 여신들에게 둘러싸여 있는데, 그중 한 명은 1681년에 스트라스부르가 프랑스에 병합된 것을 상징한다. 문 위의 아치형 상부에는 전쟁의 여신인 벨로네(서쪽)와 네덜란드 전쟁의 세 동맹국(북쪽), 신성로마제국(동쪽), 에스파냐령 네덜란드(거울의 방 입구)가 그려져 있다. 모두 프랑스와 전쟁을 했다가 패배한 나라들이다. 루이 14세는 거의 평생 동안 전쟁을 했다. 


벽난로는 웅장한 장식예술의 훌륭하고도 드문 예로, 코아제보(1649-1720)라는 조각가가 만들었다. 나팔을 부는 어린아이, 전리품, 전쟁의 참화, 묶여 있는 노예는 이 방이 전쟁의 방이라는 것을 잘 보여준다. 


자, 드디어 너무나 유명한 거울의 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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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의 방


길이가 73미터, 폭이 10.5미터인 이 방은 절대군주인 루이 14세가 얼마나 위대한가를 보여주기 위해 만들어졌다. 창문은 17개, 거울은 357개, 샹들리에는 27개다. 열일곱 개의 아치형 거울이 열일곱 개의 창문을 마주보고 있어서 오후에 해가 넘어가면 창문을 통해 들어온 햇빛이 거울에 반사되어 장관을 이룬다. 망사르가 설계하여 1678년에서 1684년까지 6년 동안 지었고, 화가이자 장식가인 르브룅이 1680년에 실내장식을 시작했다.


엄청난 넓이나 거울의 숫자와 크기에 의해 이 거울의 방은 17세기의 일대사건이었다. 그 당시 거울은 쉽게 만들거나 구하기 힘든 매우 귀한 물건이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 당시의 수상이었던 콜베르는 유리를 다루는 기술에서 우위를 보이고 있던 베니스에 맞서기 위해 유리공장을 설립한다. 아주 작은 거울 하나도 엄청나게 비쌌던 그 시절에 이 공장에서는 크기도 크고 품질도 좋은 거울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 콜베르는 1672년에 베니스 산 거울의 수입을 금지시켰다. 


자, 이제 천장을 올려다보라. 화가 르브룅(그가 다 그린 것은 아니고 그의 문하생들도 함께 그렸다)이 루이 14세의 업적을 그린 그림 30점(주요한 주제는 네덜란드 정복이다)이 1,000제곱미터에 걸쳐 펼쳐져 있다. 이중 절반은 미리 그린 다음 천장에 갖다 붙였고, 나머지는 직접 그렸는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을 때 르브룅의 나이가 예순이었다. 


원래 거울의 방에는 많은 조각과 가구가 있었으나 1789년에 일어난 프랑스혁명 때 대부분 사라졌다. 


이 방은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루이 14세는 국빈들을 주로 왕의 공간에서 알현했지만, 제네바 총독이나 타이 대사, 페르시아 왕, 터키 대사는 이 거울의 방에서 알현했다. 여기서는 또 1770년에 루이 16세와 마리-앙투아네트의 결혼식 날 밤에 가면무도회가 열리기도 했다. 그리고 유명한 “마리-앙투아네트의 목걸이 사건”에 연루된 로안 대주교가 루이 16세의 명에 따라 체포된 곳이기도 하다.


또 1871년에는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독일이 이곳에서 독일제국을 선포했고, 복수할 기회를 노리던 프랑스도 바로 같은 장소에서 1919년에 연합국과 함께 독일과 베르사유 조약을 맺어 1차 세계대전을 종결짓기도 했다. 


<글 사진: 이재형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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