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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이재형 작가, <나는 왜 파리를 사랑하는가> 연재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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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3-11-14 05:17 조회 2,179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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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세, 오랑주리 미술관


파리광장은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이재형 작가의 프랑스 르퓌 산티아고 순례길 연재를 마치고,  

이재형 작가의 파리 저서, (<나는 왜 파리를 사랑하는가> 2022년 디이니셔티브 출판)를 연재합니다. 

                                                                                       이 모든 것을 허락해 주신 이재형 작가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앙리 드 툴루즈-로트렉(Henri  de  Toulouse-Lautrec,1864-1901), <춤추는 잔 아브릴(Jane Avril dansant)>, 1891, 

85.5 x 45 cm, 5층, 프랑수아즈 카셍 전시실. 


파리를 찾는 관광객들이 거의 예외 없이 찾는 곳이 몽마르트르, 그중에서도 물랭루즈다. 지하철역이 바로 옆에 있어서 더더욱 인파로 북적거리고, 사람들은 항상 이곳을 향해 카메라를 들이대고 있다. 


또 캉캉춤을 공연하는 시간이 되면 관객들이 물랭루즈 앞에 길게 줄을 선다.

물랭루즈는 1889년에 생긴 카바레다. 1889년, 파리에서는 프랑스혁명 100주년을 기념하는 만국박람회가 개최되었다(에펠탑 은 이 박람회장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세워졌다). 1889년부터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날 때까지의 기간은 흔히 벨 에포크라고 불린다. 


평화롭고, 산업이 발전하고, 풍요한 문화가 꽃을 피우고, 낙관주의가 팽배하고, 인간에 대한 믿음이 널리 퍼져나가던 시대였다.

이러한 시대에 몽마르트르는 점점 더 도시화되어가던 파리에서 유일하게 목가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던 언덕이었다. 


몽마르트르에는 포도밭과 과수원, 채소밭이 있었고, 30여 개의 풍차가 돌아갔다. 그러자 주중에 일을 하느라 지친 파리지앵들이 주말에 몽마르트르로 몰려와 마시고 춤추며 스트레스를 풀던 곳이 바로 카바레였고, 그중 대표적인 곳이 물랭루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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툴루즈-로트렉 <춤추는 잔 아브릴>


그리고 여기서 캉캉춤이 생겨났다. 많은 댄서들이 캉캉춤으로 이름을 날렸고, 화가 앙리 드 툴루즈-로트렉은 이들의 모습을 화폭에 그려 널리 알렸다.


로트렉은 1884년부터 몇 년 동안 이 댄서들이 춤추는 모습을 그렸다. 1889년에는 “라 글뤼”라고 불리던 루이즈 베베르를 집중적으로 그렸고, 

1892년에는 “멜리니트”, 즉 “폭탄”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잔 아브릴이 혼자 춤추는 모습을 많이 그렸다. 


<춤추는 잔 아브릴>은 그중 하나다. 그녀는 두 다리와 허리를 미친 듯이 흔들어대며 춤을 추었기 때문에 언론에서는 그녀를 “광란의 난초”라는 별명으로 부르기도 했다.


툴루즈-로트렉은 등장인물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배경을 그리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이 작품처럼 많은 부분이 그려지지 않고 마분지가 그대로 드러나 있어서 꼭 습작처럼 보이는 것이다. 툴루즈-로트렉이 1886년과 1887년, 1896년에 그린 그림들은 대부분 이렇다.



-폴 고갱(Paul Gauguin, 1848-1903), <바이루마티 (Vairumati)>, 1897, 73 x 94 cm ; <타이티 여인들(Femmes de Tahiti)>, 1898, 69 x 91.5 cm, 5층, 프랑수아즈  카셍 전시실.


한 매혹적인 여성이 황금색 침대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첫번째 작품은 제목이 “바이루마티”다. 폴 고갱은 이 작품을 타이티 섬에 두 번째로 머물던 1897년에 그렸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젊은 여성과 흰 새는 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갈 것인가?>(1898, 보스톤 미술관)에도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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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갱 <바이루마티>


바이루마티는 타이티 섬의 모신이다. 폴 고갱은 <고대 마오리 신앙>과 <노아노아>라는 책에서 이 여신에 관한 신화를 이야기한다. 

창조신 타아오라의 아들인 오로는 젊은 여성을 아내로 맞아들여 인간보다 우월한 종족을 탄생시키고 싶어 했다. 그는 여동생 하오아오아 여신과 테우리 여신과 함께 자신에게 어울릴 만한 여성을 찾아 섬을 돌아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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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갱 <타히티 여인들>


그는 어느 호수 근처의 보라보라에서 아름다운 바이루타미를 만나 한눈에 반했다. 그는 매일 밤 무지개를 타고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가 바이루타미를 만났다. 그들의 결합으로부터 태어난 라이 호아 타푸는 마오리 족의 선조가 되었다.


고갱은 타이티 주재 프랑스 영사 자크-앙투안 뫼렌우가 1837년 출판한 <대양의 섬들을 여행하다>라는 책을 읽고 마오리 족의 문화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이 책은 여전히 보존되고 있는 진정한 마오리 족 문화에 대해 기술했지만, 1891년 처음으로 타이티 섬을 찾아간 폴 고갱은 더 이상  이같은 문화를 접할 수가 없었다.


폴 고갱이 타이티섬에 처음 머무른 기간(1891-1893) 중에 그린 <타이티 여인들>을 보라. 왼쪽 여성은 파레오라고 불리는 전통의상을 입고 있는 반면 오른쪽 여성은 단추를 채우는 긴 드레스를 입고 있다. 


타이티 여성들은 파레오는 일을 할 때나 사석에서 입고, 이 드레스는 여러 사람 있는 데서 입었다. 19세기 중반 유럽의 선교사들과 식민자들이 타이티에 들여온 이 드레스는 타이티 날씨가 습하기 때문에 늘 축축했다. 그 때문에 많은 여성이 유럽에서 건너온 전염병, 특히 결핵에 걸려 죽는 데다가 알코올 소비가 늘어나면서 타이티 인구가 크게 줄어 들었다. 그래서 고갱이 타이티 섬에서 그린 여성들은 이렇게 우울한 표정으로 깊은 생각에 잠겨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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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랑주리 미술관

오랑주리 미술관 건물은 원래 겨울에 튈르리 공원의 오렌지나무 화분을 넣어두는 장소였다. 그랬던 것이 클로드 모네가 그 얼마 전 국가에 기증하겠다고 약속했던 <수련> 연작을 이곳에 전시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의 친구이자 국무회의 의장이었던 정치인 조르주 

클레망소가 오랫동안 노력한 끝에 이제 우리는 이 걸작을 달걀 모양으로 생긴 두 개의 방에서 볼 수 있게 되었다.


클레망소는 지베르니로 자주 모네를 찾아가 백내장을 앓고 있던 이 인상파 회화의 완성자가 <수련> 연작을 잘 마무리하도록 격려했다. 한편 그는 전시 공간이 이 작품에 최적화될 수 있게끔 건물을 개조하도록 하기 위해 프랑스 정부와 협상을 벌였다. 그리하여 모네가 세상을 떠나고 나서 6개월 뒤인 1927년 6월 클레망소가 참석한 가운데 <수련> 연작이 새로 단장한 이 미술관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이 오목한 작품들은 높이가 2미터, 길이가 6미터에서 17미터에 달하며, 전체 면적이 200m2에 달하고, 원형으로 전시되어 있다. 

모네는 관람객이 "평화로운 명상"에 빠지도록 하기 위해 이 작품들을 그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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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네 <수련> 연작


많은 사람이 학살당한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나서 인류에게 희망과 평화의 메세지를 전하고 싶었던 그는 인간이 일체 등장하지 않는 시적 자연을 이렇게 그려낸 것이다. <수련> 연작은 그의 예술적 유언이며 평화에 대한 찬가다.


전시실에 들어서는 순간, 시간이 멈추어 서는 듯하다. 

추상에 가깝게 흰색과 분홍색으로 점점이 그려진 수련들이 수면 위에서 흔들린다. 푸르스름한 물이 연한 색 하늘과 구름, 황혼빛을 차례로 반사하며 우리를 감싼다. <수련> 연작은 빛과 대기가 변화함에 따라 느껴지는 주관적 느낌을 포착하여 즉시 화폭에 옮긴다는 인상파 미학을 매우 충실히 구현한 작품이다.


<글 사진 : 이재형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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