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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이재형 작가, <나는 왜 파리를 사랑하는가> 연재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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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3-10-03 04:26 조회 1,53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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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세 미술관 다섯번째


본지는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이재형 작가의 프랑스 르퓌 산티아고 순례길 연재를 마치고,  

이재형 작가의 파리 저서, (<나는 왜 파리를 사랑하는가> 2022년 디이니셔티브 출판)를 연재합니다. 

                                                                                       이 모든 것을 허락해 주신 이재형 작가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9. 오귀스트 르누아르(Auguste Renoir, 1841-1919), <그네(La Balançoire)>, 1876, 92 x 73cm, 5, 30번 전시실.

몽마르트르 언덕의 테르트르 광장은 초상화를 그리는 관광객들로 일년내내 소란스럽게 북적인다. 하지만 여기서 단 3분만 걸어가면 나타나는 몽마르트르 박물관(Musée de Montmartre, 12, Rue Cortot)에 들어서면 정적 그 자체인 또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이 박물관은 높은 곳에 있어서 저 아래로 포도밭과 라팽아질 카바레, 생뱅상 묘지 등 전원적인 풍경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정원의 르누아르 카페에 앉아 차 한 잔 마시며 이 도시 속 오아시스의 고요를 즐기고 있노라면 나무에 매달려 있는 그네가 눈에 들어온다. 르누아르가 <그네>라는 작품에서 그린 바로 그 그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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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마르트르 박물관 


1876년 그는 지금은 몽마르트르 박물관이 된 몽마르트르 코르토 거리 12번지에 작은 아틀리에를 얻어 이사한다. 그리고 1876년 이곳에서 인상파의 걸작으로 꼽히는 두 작품을 탄생시키는데, 인상파의 미학적 원칙들을 인물에 적용시킨 <그네><갈레트 풍차의 무도회>가 바로 그것이다.

화창한 어느 날, 파리의 코르토 거리 12번지에 있는 르누아르의 아틀리에 건물 정원. 한 젊은 여성이 그네의 발판에 발을 딛고 서 있다. 등을 보이고 있는 노란 모자 남자는 여자에게 뭐라고 얘기하는 중인데, 여성은 그와 눈을 마주치지 않고 땅바닥을 내려다보고 있는 걸로 몹시 불편한 모양이다. 또 한 명의 남자는 나무에 몸을 기댄 채 이 두 사람에게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으며, 그림 맨 왼쪽의 어린 소녀는 세 사람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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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느와르 <그네> 


그런데 <그네>는 이렇게 등장인물들의 시선이 교차하거나 교차하지 않는 시선의 놀이기도 하지만 현란한 빛의 놀이이기도 하다. 나뭇가지를 뚫고 들어온 빛은 파편처럼 부서져 땅바닥에서 보석처럼 반짝거리고 사람들이 입고 있는 옷 위를 나비처럼 날아다닌다. 이 그림의 주인공은 바로 이 빛이다.

프랑스어 단어 중에 Fête galante라는 단어가 있다. 프랑스에서 루이 15세 시대인 1715년부터 1775년까지 부유한 남녀 귀족들이 야외에서 유희를 벌이던 모임을 가리키는데, 우리말로 하면 밀당정도 될 것이다. 개인들이 루이 14세의 엄격한 절대군주 시대가 끝나고 은밀한 욕망을 드러내던 시대의 산물이라 할 수 있는 이 밀당풍경을 와토(<키티라 섬 순례>, 1717, 루브르 미술관)라든가 부세(<전원생활의 매혹>, 1740년경, 루브르 미술관) 같은 화가들이 그렸다. 그네에 올라탄 한 젊은 여성이 늙은 남편을 등 뒤의 어둠 속에 두고 활짝 날아올라 젊은 애인에게 다리를 보여주는 프라고나르(1732-1806)<그네>(1769, 월리스 콜렉션)도 그런 그림이다. , 르누아르의 <그네>를 보자. 이 젊은 여성은 이 그림 여기저기 흩뿌려져 있는 파랑색과 초록색, 노란색, 주황색, 빨간색, 오렌지색, 장미색의 세례를 받으며 금방이라도 공중으로 날아오를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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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고나르 <그네>


<그네>(<라갈레트 풍차간에서의 무도회> 역시>1877년에 열린 제 3회 인상파전에 전시되었으나 완전한 실패를 맛보면서 르누아르는 몹시 곤궁해진다. 그러자 그는 살롱전에서 당선되는 것만이 성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 인상파전에 참가하는 것을 그만둔다. 그리고 선의 효과와 대비, 윤곽선을 더 한층 강조하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는데, 이렇게 해서 탄생한 작품이 바로 <보트놀이 하는 사람들의 점심식사>.

그렇다고 해서 <그네>가 모든 사람들로부터 외면받은 것은 아니었다. 작가 에밀 졸라는 이 작품에 깊은 인상을 받아 1877년 발표한 <사랑의 한 페이지>라는 소설에 정원에서 그네를 타는 여주인공 엘렌을 등장시키기도 했다.

르누아르의 둘째 아들인 장 르누아르(1894-1979)<게임의 법칙>이라든가 <위대한 환영>처럼 세계영화사에 길이 남을 작품을 만든 영화감독이다. 그는 1936년에 <소풍(La partie de campagne)>이라는 작품을 연출했다. 모파상의 <소풍>을 각색한 이 동명의 작품에서 가족과 함께 센 강변으로 소풍을 나온 파리지엔 앙리에트(앙리에트를 연기한 실비아 바타유는 작가 조르주 바타유와 결혼했다가 이혼하고 자크 라캉과 재혼했다)는 두 청년이 탐욕스런 눈길로 바라보고 있는 걸 느끼며 그네를 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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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누와르 <라갈레트 풍차간에서의 무도회>


"그녀는 열여덟에서 스무 살 사이로 보이는 아름다운 여성으로 만일 당신이 그녀를 길거리에서 만나면 당신은 갑작스런 욕망을 느끼며 밤이 될 때까지 한편으로는 막연히 불안해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관능에 몸을 떨게 될 것이다. 키가 크고 허리가 잘룩하며 엉덩이가 풍만한 그녀는 피부는 짙은 갈색이었고 눈은 무척 컸으며 머리칼은 칠흑처럼 쌔까맸다. 몸에 착 달라붙는 원피스를 입고 있어서 그녀의 풍만하고 단단한 몸매가 그대로 드러났고, 옷을 추스리려고 허리를 뒤틀 때마다 그녀의 몸매는 더 한층 또렷하게 드러났다. 그녀가 머리 위로 두 팔을 올려 밧줄을 꼭 잡고 있어서 그녀가 조금이라도 더 높이 올라가려고 발을 구를 때마다 그녀의 가슴이 흔들림 없이 들어올려지곤 했다. 바람이 불자 그녀가 쓰고 있던 모자가 그녀 뒤에 떨어졌다. 그네가 조금씩 더 높이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오곤 하면서 그녀의 날씬한 다리가 무릎까지 드러나보이곤 했다. 웃으며 그녀를 바라보고 있던 두 남자는 그녀의 치마가 홱 들어올려지면서 인 바람이 얼굴로 밀려들 때마다 포도주 향보다 더 자극적인 야릇한 기분을 느꼈다." 


아들이 연출한 영화 <소풍>에 등장하는 그네 장면은 <그네> 라는 그림을 그린 아버지에 대한 오마주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글 사진: 이재형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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