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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 [화가 아틀리에 탐방] 한홍수 작가, 양립되는 것들의 경계를 허물고 대자연의 숭고함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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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3-09-12 07:18 조회 1,44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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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홍수 작가 아틀리에에서


한홍수 작가가 프랑스로 돌아왔다.

마치 고향을 떠나 먼길을 다녀온 사람같다. 프랑스가 본토 같은 이 모순적인 느낌은 무엇일까 ?

아마 30년전 한국의 익숙하고 안정된 생활을 버리고 오로지 작품을 하고 싶어 파리로 온 그의 화가로서의 여정 때문이었나 보다.

작품에 대한 열정 하나로 파리에 도착한 그는 그야말로, ‘길바닥 위에서다시 시작해야만 했다. 가난한 이민자 화가에서 프랑스 예술가협회인 소나무작가협회 전임 회장, 유네스코 전시, 그리고 2019년부터 한국과 프랑스를 오가면서 전시 및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한홍수 작가의 작품은 그동안 변화를 거쳐왔다.

머물러 있지 않고 항상 새로운 시도를 해보고자 하는 그의 작품 세계를 알고자, 더불어 그의 삶의 이야기를 듣고자, 파리에서 14킬로 가량 떨어진 우이(Houilles)작업실을 찾았다.

9, 뒤늦은 폭염이 시작한 때에 찾은 그의 우이(Houilles) 작업실은 주택의 정원을 가로질러 안쪽에 위치해 있었다.

작업실 안으로 들어서자 마자 한홍수 작가의 작품이 바뀌었음을 감지할 수 있었다. 2015년 유네스코 전시, 2016년 파리 보아 갤러리 전시에서 보았던 파스텔톤의 분홍과 파랑 빛은 사라지고, 거센 회오리가 있는가 하면, 작가의 강한 붓터치가 느껴지는 파도가 몰아치고 있었고, 너무 강해 빛을 품어내는듯 했으며, 다시 잠잠해지는 듯 했지만, 강한 생명력이 있었다. 그리고 단색화되어 있다.

그의 작품은 변했지만, 모습은 변하지 않았다. 여전히 짧은 단발머리에 머리띠를 한, 예전과 같은 모습이었다. 시간은 그를 크게 변화시키지 못했다.     

평생 그를 내조해온 부인, 백연숙씨와 함께 했다.

한홍수 작가는 항상 자기 작품이 좋다고 해주는 부인이 있어 든든하다고 한다. 좀 민망할수도 있지만, 자기 확신이 없을 때가 많은데, 누군가가 좋다고 해주는게 큰 힘이 된다고 이야기한다.

그의 Houilles작업실은 예전에 차고로 사용했던듯하다고 한다. 7미터 가량되는 2층을 단층으로 만들어 계단을 설치했다. 10년 정도 작업실로 사용하다가 음악연습실로 내어주면서, 작가는 블로뉴에 작업실을 얻어가지고 10년정도 그쪽에서 작업을 했다.

땅끝마을, 전남 해남이 고향인 한홍수 작가는 2018년 노모 곁에 있기 위해 일부러 해남의 행촌 레지던시로 갔다.  그리고 2019년에는 경기도 광주의 영은 미술관에 레지던시 작가로 가게 되면서, 한국과 프랑스를 오고가며 작품 활동 및 전시를 하고 있다. 영은 미술관에서 작업실을 배정받아서 좀 더 큰 공간을 프랑스 작업실과 똑 같이 꾸며놓고 작업을 하고 있다.  

작품 성향이 바뀌었다고 하니, 한홍수 작가는 작가가 작품 스타일을 바꿀 때는 변화가 있을 때라고 한다. 그의 작가 여정에, 인간과 자연이라는 맥락은 같지만, 세 단계로 작품이 바뀌었다고 볼 수 있다.

일단 학부 때인 80년대는 민중미술 중심의 표현주의적인 작품을 하다가, 1992년에 프랑스로 와서 그해 카셀 도큐멘타에 갔는데, 거기서 우연히 뒤셀도르프 쿤스트 아카데미를 다니는 후배를 만난 계기로, 쿤스트 아카데미에2년반 정도 청강생으로 있었다. 당시 독일에서는 신표현주의가 활성화될 때여서 한 작가의 작업 성향과 맞았다. 2000년도에 작업실을 블로뉴로 옮기면서 심리적인 변화와 더불어 많은 고민을 하다가, 유네스코에 전시했던, 인간을 테마로 하는 파스텔 톤의 컬러 작업을 하게 되었다.


비평가, 프랑소와즈 모낭, « 천사가 지나가는 화폭 »

이를 두고 프랑스 예술 비평가인 프랑소와즈 모낭(Françoise Monnin) ‘천사가 지나가는 화폭이라고 한 바 있다.

프랑스 속담 중에 여러사람이 대화를 하다가 끊어지는 순간을 천사가 지나갔다라고 한다. 그건 공허함이나, 적막함이 아닌,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어떤 경계를 의미한다. 대화는 계속 이어지겠고, 주제는 같을 수도 혹은 다를 수도 있다. 당시 작가는 작업 성향을 바꾸면서, 어떤 경계에 서 있는 것 같은 생각을 표현하고자 했는데, 이 비평가가 작가의 의도를 잘 읽어주었다고 작가는 이야기한다. 이 같은 작업은 10년정도 지속되었다. 그러다가 2019년 영은 미술관에 레지던시로 가면서, 코로나 시기와 겹치면서 한국에서 오랜 시간 작업을 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한국화를 접할 기회가 많았다. 청전 이상범의 작품을 보면서 먹이 그냥 검은 색이 아닌 여러가지 색으로 보이면서 인상파 화가 작품들이 떠올려졌다고 한다. 유화지만, 검은색으로 그리기 시작하면서, 색을 뺀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영은 레지던시와 코로나, 그리고 청전 이상범의 작품을 접하면서, 작업 성향이 바뀌는 터닝포인트를 가지게 된 것이다. 이는 서양화에 대한 회의라기 보다는 일종의 돌파구를 찾고자 하는 시도였다. 프랑스에서 작업해온 30년동안 스며든 것들이 많겠지만, 동양의 기운과 생동감을 찾고 싶었다. 특히 고향인 해남에서 어린 시절에 자연이 주는 것들이 다시 살아나면서 화폭에 담게 된 것이다. 어린시절 해남 바닷가에서 무심히 느꼈던 자연의 기운, 즉 물결이 부딪혀서 거대해지는 기운에 일종의 쇼크같은 감동을 받는데, 그게 만들어내는 찰나의 공포, 하지만 모순적이게도 그 속에 내재하는 희열, 그런 자연의 숭고함을 한 작가는 표현하고자 했다고 한다.

« 어려서 낳고 자란 해남 땅끝마을 겨울 언덕에서 하염없이 휘날리는 눈발을 보고 마음이 한없이 산란했던 기억.

들판 한곳에 큰 바윗덩어리를 보고 무서움과 알 수 없는 슬픔을 느꼈던 기억.

오랫동안 가뭄이 들어 모든 대지가 메말라 건열되었던 땅.

소용돌이치는 우수영 울둘목 바다의 물결

산기슭을 지나다 무서운 기운이 느껴져 소름이 돋아났던 몸

자연의 무서움(숭고함)과 기운을 몸으로 체득하였기에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자연과 인간의 관계이다.

농부의 아들이어서 그런지 몸을 쓰는 작업, 몸으로 이루어진 작업을 할 때 내 자신을 느낀다. »

-작가 노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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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홍수 작가 아틀리에에서

 

일기쓰듯 자화상을 그리면서 하루를 시작

작가에게 작품 성향이 바뀌어진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 이에 한홍수 작가는 표현 방식만 달라질뿐 맥락은 같다고 이야기한다. 작가는 항상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고 한다. 작업을 할 때 작가는 본인을 느낄수 있는 시간이다. 그건 자기를 알아가는 것일 수 있고, 자기를 성찰하는 시간이라고 한다. 작가는 항상 자기에게 질문을 던진다. 왜냐하면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매순간이 의문과 질문의 연속이다. 그런 작가가 변하지 않는다는건 그에게는 죽음이라고 한다.  

그게 생활화가 된다면 정신과 육체를 단련시키는 것이라고 한 작가는 이야기한다.

그는 매일 일기쓰듯이 하루도 빠짐없이 자화상을 그린다. 재료도 그냥 손에 잡히는데로 그린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작업으로 이어지게 된다. 주말에는 단련을 위해 크로키를 한다.

한국과 프랑스에서 작업할 때의 차이점을 묻는 질문에 작가는 일단 작업하게 되면 못느낀다고 한다. 하지만 심리적으로 프랑스에서의 작업이 좀더 안정적이라고 한다. 하지만 각각의 장단점은 있다고 한다. 또한 전시볼 수 있는 여건이 아무래도 프랑스가 좀더 낫다고 한다. 작가는 예전 몇 년간, 한달에 한번씩 루브르 박물관에 갔다. 고대 작품이 있는 루브르를 지나, 그다음 행선지가 인상파들의 오르세 미술관으로 이어졌고, 그 다음이 퐁피두 현대 미술관이다. 퐁피두가 끝나면 갤러리들이 즐비한 파리 마레지구를 한바퀴 돈다. 그러면서 미술의 흐름을 파악하곤 했다고 하면서, 프랑스가 미술관 동선들이 잘 해놓았다고 했다. 미술에 문외한이 가도 그 흐름을 충분히 알 수 있게 해놓았다는 것이다.

 

루브르 박물관 작품들 보고 영향을 받기도

이렇듯 한홍수 작가는 많은 전시를 다니면 다른 작품들을 보려고 한다. 그럼 작가에게 다른 작품들을 접하는건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한홍수 작가는 이전 작품 즉, 프랑소와즈 모낭이 천사가 지나가는 화폭이라고 일컬었던 작품은 루브르 박물관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고대 작품들을 보면서 작품 재료부터 새로 시작해서 만들어가야 되겠다는 결심을 하기도 했다. 

물론 본인의 의지도 중요하지만 주위의 도움 없이는 어렵다고 하면서, 가장 큰 도움은 부인이었다고 한다. 또한 함께 유네스코에서 전시한 중국의 왕두 작가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고, 서로 도울 수 있으면 도와야지만 일이 될 수 있다고 작가는 믿는다.

 

자연으로 시선을 돌려

예전 어떤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한 작가는 작가란 이 세상에서 양립되는 것들의 경계에 서있는 사람이라고 한 바 있다. 동양과 서양, 구상과 추상, 영원과 현재, 이상과 현실, 초월적인 것과 세속적인 것 등, 그러면서 그 경계를 지우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게 작가의 젊은 시절의 작품 철학이었다면 그는 지금 이미 그 경계를 허물었고, 나아가 대자연의 숭고함을 표현하고 있다. 어쩌면 갈등의 시대를 지나, 화해와 화합으로 나아가면서 이제 작가의 시선은 인간의 본연인 자연으로 향하고 있나 보다. 한홍수 작가는 10월에 있을 한국 전시를 위해 다음주 한국에 간다. 그가 다시 프랑스로 돌아올 날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한홍수 작가 홈페이지

 

한홍수 개인전

2023105-114

서울, 아트살롱디 H

서울시 영등포구 국제금융로8길16 

신영증권BD, B128호

오프닝: 10월 5일  

www.artsalonh.com



<파리광장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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