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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이재형 작가, <나는 왜 파리를 사랑하는가> 연재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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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3-08-29 05:42 조회 1,64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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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서도 살아있는 예술가들, 파리 페르 라세즈 묘지 


본지는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이재형 작가의 프랑스 르퓌 산티아고 순례길 연재를 마치고, 

이재형 작가의 파리 저서, (<나는 왜 파리를 사랑하는가> 2022년 디이니셔티브 출판)를 연재합니다. 

                                                                                       이 모든 것을 허락해 주신 이재형 작가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12. 시몬 시뇨레(1921-1985), 이브 몽탕(1921-1991)

시몬 시뇨레는 그녀가 태어난 독일 비스비든에서 많이 볼 수 있다는 자작나무 한 그루가 그늘을 드리우고 있는 무덤에 이브 몽탕과 함께 묻혀 있다. 동갑내기인 이 두 사람은 1949년 처음 보자마자 서로에게 한눈에 반했고, 시몬 시뇨레는 남편 이브 알레그레를 버리고 2년 뒤에 이브 몽탕과 결혼하여 35년 동안 삶을 함께 했다.

자크 베케르 감독의 <황금 투구>(1952)에서 꿋꿋이 자신의 사랑을 찾아가는 매춘부 역할을 연기하여 이름을 알린 그녀는 <꼭대기 방>이라는 작품으로 프랑스 배우로는 최초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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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몬 시뇨레와 이브 몽탕이 함께 묻혀있는 무덤 


이브 몽탕의 원래 이름은 이보 리비이며, 파시스트들이 지배하는 이태리를 떠나 프랑스 마르세유에 정착한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흉내 전문 연예인으로 무대에 데뷔할 때 그는 "이보, 몽타!(이보, 빨리 올라와)"라고 외치곤 하던 어머니를 추억하여 예명을 이브 몽탕으로 정했다. 시몬 시뇨레는 병으로 시력을 잃고 1985년에 숨을 거두었으며, 이브 몽탕은 그로부터 6년 뒤인 1991년 얼음처럼 차가운 호수에서 수영을 하다 심근경색으로 아내 뒤를 따라갔다.

"! 난 그대가 기억해주었으면 정말 좋겠어요 우리가 함께 했던 행복한 나날들을 그때의 삶은 한층 더 아름다웠지요 그리고 태양도 오늘보다 더 뜨거웠지요 낙엽이 수북하게 쌓여 있네요 자, 난 잊지 않았답니다 낙엽이 수북하게 쌓여 있네요 추억과 미련도요 그리고 북풍이 낙엽을 쓸어가는군요 차가운 망각의 밤 속으로 자, 난 잊지 않았답니다[]"(<고엽>)

 

13. 조르주 비제(1838-1875)

파리의 센 강 북쪽 두에 거리 22번지에는 조르주 비제가 살면서 <카르멘>을 작곡하기 시작한 집(사실은 장인의 집이다)이 있다. 그 후에 비제는 파리 북쪽의 부지발이라는 도시로 이사를 갔다가 뇌경색으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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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주 비제 


그는 음악 천재로 불리며 아홉 살 때 파리 음악원에 들어갔다. 하지만 그 이후에 경제적 어려움에다가 아내와의 불화로 힘들어하던 그는 <카르멘>의 초연이 엄청난 실패로 끝나는 바람에 결국 서른여섯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다.

그의 무덤은 오페라 극장을 지은 샤를 가르니에가 설계했다. 원래는 그의 흉상이 서 있었는데, 도둑을 맞았다가 되찾아서 지금은 묘지 창고에 보관되어 있다.

나는 그의 걸작 <카르멘>보다 <진주조개잡이>"귀에 익은 그대 음성"이 그의 비극적인 삶을 잘 표현하고 있는 것 같아 더 좋아한다.

 

14. 이사도라 던칸(1877-1922)

미국에서 태어난 이 무용수는 춤의 자연스러움과 자유로운 표현성을 우선시함으로써 현대무용의 초석을 놓았다. 그녀는 몸의 아름다움과 조화를 보여주기 위해 망설이지 않고 거의 벌거벗은 채 춤을 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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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도라 던칸


특히 그녀는 헬레니즘으로 돌아가기 위해 춤에 영성을 부여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녀의 사생활은 결코 행복하지 않았다. 혁명의 이상을 간직하고 있던 그녀는 열여덟 살이나 어린 러시아 시인 에브게니 에세닌과 1922년 결혼했다. 하지만 술과 폭력에 빠져 살던 에세닌은 결국 그녀와 헤어지고 나서 러시아로 돌아갔다가 자살했다. 또 그녀가 혼외로 낳은 두 아이는 운전사의 실수로 인해 타고 있던 자동차가 파리의 센 강으로 굴러 들어가면서 유모와 함께 목숨을 잃었다.

그녀 역시 1927년 니스에서 남자친구의 자동차를 타고 가다가 걸치고 있던 스카프가 자동차 바퀴에 감기는 바람에 목이 졸려 사망했다.

 

15. 폴 라파르그(1843-1911), 로라 마르크스(1845-1911)

이 묘지의 남동쪽 모퉁이에는 18715월 일어난 파리코뮌 당시 정부군이 140여명의 코뮌군을 총살시킨 코뮌군의 벽이 있다. 그리고 이 벽 주변의 묘역에는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사상을 실천한 인물들이 주로 묻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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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라파르그와 로라 마르크스


그중 한 무덤에서는 폴 라파르그와 그의 아내 로라 마르크스가 함께 영원한 안식을 취하고 있다. 폴 라파르그는 사회주의자로 저널리스트이자 경제학자, 작가였고, 파리코뮌에 참여했으며, 1871년 열린 1 차인터내셔널에 프랑스 대표로 참석하기도 했다. 작가로서의 그는 무엇보다도 <게으름을 찬양함>이라는 책으로 한국 독자들에게 알려져 있다. 로라 마르크스는 카를 마르크스의 둘째 딸이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부부는 죽은 날짜가 19111125일로 같다. 같은 날 같은 시간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왜일까?

이유는 라파르그가 쓴 다음 글에 나와 있다.

"그 가혹한 노쇠는 삶의 쾌락과 즐거움을 하나씩 내게서 빼앗아가고, 나의 신체적, 지적 능력을 앗아갈 것이다. 나의 힘과 의지는 점점 더 약해져 결국은 나 자신과 다른 사람에게 짐이 될 것이다. 나는 그것을 원치 않는다. 그러니 지금처럼 그나마 몸과 정신이 온전할 때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17. 마르셀 프루스트(1871-1922)

"죽음이란 존재의 의미를 지닌 것을 지우고 그렇지 않은 것을 그대로 놓아두는 것이다. 남이라는 존재가 고통이었던 마음에서 그것을 지워버릴 뿐 아무 것도 다시 채워 넣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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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셀 프루스트 


18. 미셀 페트루치아니(1962-1999)

 


인간은 예술을 통해 모든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다. 페트루치아니는 골형성부전증이라는 희귀병에 걸려 키 90cm, 몸무게 30kg에 불과한 신체적 한계를 음악을 통해 훌쩍 뛰어넘어버린 거인 재즈 피아니스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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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셀 페트루치아니 


키가 너무 작아 누군가가 안아서 피아노 앞에 앉혀주어야만 했던 시한부의 삶이었지만 그의 음악은 밝고 긍정적이며 유쾌하고 낭만적이다.

 

19. 마노 솔로(1963-2010)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삶을 꾹꾹 짜내듯 처절하게 절규하는 목소리. 마노 솔로의 노래는 외침에 가깝다. 하지만 주로 파리에 대해 노래하는 그의 목소리에는 그 어떤 아름다운 음악보다 더 듣는 사람의 마음을 후려치는 삶의 진실이 담겨 있다. 그는 공연 중에 자기가 에이즈에 걸렸다는 사실을 털어놓았고, 여전히 프랑스 사회의 문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소외된 자들의 삶을 노래하였다. 그는 역시 프랑스 사회의 위선이라는 문제를 집중적으로 파헤친 영화감독, 클로드 샤브롤 옆에서 영원한 안식을 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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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 솔로

 

"눈물이 내 피를 끓게 하네. 꼭 어린 소녀, 너와 함께 있고 싶은 욕구처럼, 하지만 난 그럴 수 없어, 그럴 수 없어 너와 함께 바르베스에서 클리시 광장까지 바르베스에서 클리시 광장까지 마지막 입맞춤을 위해 불의 강, 지옥의 강물 위에서 파리여, 내게 입을 맞춰줘 날 꼭 껴안아줘 나는 늘 똑같은, 똑같은 욕구를 느끼며 일어나지 너와 함께 있고 싶다는, 그렇지만 안 돼, 안 돼 그리고 운하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피갈을 생각해 파리여, 난 널 간절히 원해 파리여, 날 껴안아줘 바르베스에서 클리시 광장까지 바로 그곳, 난 그곳에서 생명을 잃고 싶어 기다려줘, 기다려줘, 금방 갈게, 파리여…" (<바르베스 클리시>)


<글 사진: 이재형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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