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파리아줌마 단상>, 언어 장애자가 슈퍼마켓 계산대에서 일해도 운영에 차질이 없어
페이지 정보
작성자 파리아줌마 작성일 23-01-02 09:27 조회 3,191 댓글 0본문
무척이나 추웠던 어느날 오랜 만에 그 가게에 들르게 되었다.
2년 전에 가끔 들르던 작은 슈퍼마켓이었다. 파리 15구에 있는 franprix였다.
언어 장애자라고 하나? 그러니까 말 못하는 이가 계산대에서 일하고 있었다. 난 그때 그녀에게 무언가를 물었던 것 같고, 손님인듯한 사람이 그녀는 말 못한다고 알려주어 다른 사람에게 물었던 듯한 어설픈 기억이 있다.
그날 그녀가 있었다.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표정 없는 얼굴이지만 진한 눈빛은 예전의 그녀였음을 상기시켜 주었다.
필요한 물건을 사서 그녀가 일하고 있는 계산대에 줄 서 있는데, 내 앞에 등 굽은 할머니가 있었다. 그녀는 할머니가 산 것들을 하나하나 봉지 안에 넣어주고는 나 뒤에 있는 사람에게 무어라 손짓을 한다. 이 할머니 계산대에 찍힌 가격 보고 돈 내면 될 것인데, 도통 보실 생각을 안했나 보다. 어쩌면 그게 안보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윽고 내 뒤에 있던 여인은 할머니에게 큰소리로 가격을 알려준다. 할머니가 돈을 낸다. 그리고 내 차례가 되어 그녀는 입만 봉쥬르~ 하는 모양을 하더라. 언어 장애 있는 이가 슈퍼마켓 계산대에 있어도 그 슈퍼 잘 돌아간다.
프랑스 내에서 꽤 인기가 좋았던 영화 <Bienvenue chez les ch'tis, 2008>의 주인공은 한 마을의 우체국장이다. 그는 프랑스 남부로의 전출 신청을 했으나 다른 장애인 후보에게 그 자리가 넘어갔다는 소식을 받게 된다. 이 소식을 들은 아내는 자주 우체국장에게 짜증을 내곤 한다.
그런 아내의 모습에 안되겠다 싶었던 우체국장은 자신의 전출 신청을 담당했던 친구를 찾아가게 되고, 그 친구로부터 프랑스 남부의 다른 지역에 조만간 자리가 또 하나 날 것이라는 소식을 듣게 된다. 하지만 이마저도 장애인에게 자리가 넘겨질 것 같다고 한다. 결국 우체국장은 최후의 수단으로 장애인인 척 서류를 조작해 전출 신청을 하기에 이른다.
물론 픽션이다. 이는 프랑스인의 남부 삶에 대한 동경을 암시하기도 하지만, 비장애인이 장애인들에게 고용에서 밀린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프랑스 정부는 장애인 수당을 주고 있으며, 우대 카드, 문화 예술 공간에 장애인들을 위한 기기와 시설을 갖추고 그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장애인에게도 일할 권리, 즉 « 장애인 고용 할당 의무 »를 부여하고 있는데, 프랑스의 장애인 근로자법은 20명 이상의 종업원을 고용한 사업장은 의무적으로 6%의 일자리를 장애인에게 제공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만약 이를 어길 시에는 정부에 큰 액수의 벌금을 물어야 한다. 이 덕분에 프랑스 내에서는 장애인 취업률이 꾸준한 성장세를 보여왔는데, 1996년만 해도 2백 명이 채 되지 않았던 장애인 근로자들의 수는 오늘날 3천여 명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파리아줌마>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