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죽음조차 삶의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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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파리광장편집부 작성일 23-01-02 04:41 조회 2,735 댓글 0본문
얼마전 지난해 말 우리나라 다큐 영화로 흥행을 이룬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를 보게되었다. 제목부터 가슴 아리게 만들었다. 어쩔수 없이 떠나야되는, 하지만 떠나지 말았으면 하는 강한 열망을 이승과 저승을 강에 비유하며 애절함을 자아나게 했다.
원래 ‘’님아 강을 건너지 마오’’란 구절은 고조선의 공무도하가에서 유래된 것이다. 남편이 강을 건너다가 죽는 것을 본 아내가 슬피 울며 노래하고는 결국 물에 몸을 던져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는 이야기다.
진모영 감독을 메가폰을 잡았고, 대명문화공장과 CGV아트하우스가 공동 배급을 맡아 2014년 11월 27일 개봉, 12월 20일을 기준으로 개봉한지 24일만에 관객수 200만 명을 넘어 <워낭소리>를 제치고 다큐멘터리 영화 역사상 가장 빠른 흥행 기록을 세웠다.
KBS [인간극장]에도 이미 소개된바 있는 강계열 할머니와 고 조병만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다큐 영화로 만든 것이다. 자녀들이 생신때 마다 해준 커플 한복을 입고 횡성 5일장에 나선 모습이 우연히 사진에 찍히며 방송이 되었고, 감독은 노부부의 사랑 이야기를 알리고 싶었다고 한다. 그렇게 1년 3개월간 노부부의 일상을 담아낸다.
봄에는 서로 귀에 꽃꽂아 주고, 여름에는 개울가에서 물장난 치고, 가을에는 쓸어모은 낙엽들을 짓궂게 뿌리며, 겨울에는 아이들 마냥 눈싸움을 한다. 그렇게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76년을 살아왔다.
할아버지는 밥이 맛있으면 많이 먹고, 맛없으면 조금드실 뿐 절대 맛없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고 한다. 또 할머니는 밤중에 화장실에 가면서도 무섭다며 할아버지에게 화장실 입구에 보초를 서게 하는 것도 모자라 노래까지 불러 달라고 했다. 그리고 할아버지는 노래를 부른다.
100세 가까운 98세의 자상하고 로맨틱한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어디 불편하지 않을까 살핀다. 그리고 89세 할머니는 남편을 의지하며 소녀적 감성 충만을 보여주고 있다. 무릎이 아파 병원에 간 할머니는 의사가 당신을 불편하게 하는데 할아버지는 아무것도 않고 있다며 짜증을 부린다.
하지만 노부부의 사랑 이야기를 담고자 했던 감독의 의도와는 다르게 촬영 도중 할아버지의 건강이 악화됐다. 심한 기침을 하는 할아버지를 비추는 카메라가 흔들린다. 때로는 멀리서 할아버지의 뒷모습만 클로즈 업 해 화면에 담긴다.
노부부의 사랑 이야기는 촬영이 거듭될수록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준비하는 이야기로 바뀌어간다. 할머니가 두 사람 사이에 나온 자식 12명 중 전쟁 혹은 홍역으로 6명이 목숨을 잃었다는 사연을 처음 털어놓았다. 그 시절에는 아무리 추워도 양말을 신을 수 없어 옥수수 껍질로 발을 감싸야 했고, 죽은 아이들에게 변변한 내복 한 벌 입혀주지 못한 것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고 한다. 그래서 할머니는 할아버지를 떠나보낼 준비를 하며 어린아이가 입을 만한 내복이나 양말, 신발을 사야 한다는 이야기를 꺼냈고, 어느 날 할아버지를 직접 목욕시킨 후 함께 시장에 가서 여자 어린이용 5벌, 남자 어린이용 1벌, 총 6벌의 내복을 구입했다. 아이들의 나이가 3살 혹은 6살인데 사이즈는 약간 큰 것이 좋다고 가게 주인에게 설명한다. 그렇게 내복을 구입해 집으로와서 할아버지에게 내복이 곱다며, 이거 하나 못입혔다며 앞서간 아이들 이름을 부르며 눈물 짓는다.
2012년 9월부터 1년 3개월, 촬영 분량만 300시간이 넘었고 제작진은 부부와 두 번의 겨울을 맞았다고 한다. 그 사이 죽음의 그림자는 점점 더 짙게 드리워졌다. 76년을 함께한 짝의 죽음을 예감한 할머니는 부엌의 아궁이에 할아버지 옷을 태우며 이렇게 이야기한다.
“내가 곧 갈께요. 할아버지 먼저 가서 정리하고 있어요. 내가 금방 못 가거든 할아버지가 데리러 와요. 데리러 오면 내가 할아버지 손잡고 ‘커플 한복’으로 새파란 치마를 입고, 노란저고리를 입고, 손을 잡고 그렇게 갑시다”
어찌 죽음이 단순히 끝이라고 할수 있을까 ? 이 노부부가 받아들이는 죽음은 일상이었고, 삶의 또다른 한부분이었다. 할아버지는 그렇게 강을 건너버렸다. 할머니는 다시 남편의 옷가지와 함께 이번에는 어린이용 내복 6벌을 함께 태웠다. 할아버지가 저 세상에서 아이들과 따뜻하게 옷을 입고 만났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진모영 감독은 “옷이 곧 다음 생으로 연결되는 다리가 되고, 내복이 영원한 사랑을 의미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할머니는 할아버지를 떠나보냈다. 죽음이 삶의 한 부분이라는건 어떻게 보면, 살아남은 자의 몫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얗게 눈덮인 산천에 있는 할아버지 무덤을 지나오며 할머니는 주저앉아 서럽게 흐느끼며 운다. 마지막 장면이다.
이 영화에 담긴 것은 죽음의 비극이 아니라 죽음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보여주는 삶의 위대함이었다. 픽션이 담을수 없는 삶의 무게가 강하게 느껴졌다.
<파리광장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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