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11월 27일 파리 테러 희생자들을 위한 국가 추모일 (201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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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파리광장편집부 작성일 23-01-03 08:50 조회 3,532 댓글 0본문
2015년 11월 27일 앵발리드의 <명예의 정원 (Cour d’honneur)>에서 11월 13일 130명의 파리테러 희생자를 기리는 엄숙한 추모식이 열렸다. 가장 높은 수준의 예우를 갖춘 이번 추모제는 애초에 장 이브 르 드리앙 프랑스 국방부 장관의 제안에 따라 에콜 밀리테르에서 열릴 예정이었으나,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은 앵발리드관(l'Hôtel des Invalides)을 고집했다. 이번 추모식을 지휘한 군 사령관은 군사 작전 중 순직한 군인들의 추모식을 이미 여러 번 주재한 바 있었다. 프랑스 국방부는 «이번과 같은 추모제는 극히 드문 경우»라며, «일반 시민에 대한 추모식을 앵발리드에서 거행하기 위해서는, 과거 레지스탕스였거나 가장 높은 등급의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수여받은 경우여야 한다. 하지만 올랑드 대통령은 명예의 정원이 가진 높은 경건성을 고려하여 이번 추모제를 앵발리드에서 열기 원했다.»고 전했다.
행사는 약 한 시간동안 이어졌다. 추모제의 전체적인 그림을 그리는데는 수많은 단계의 조정과 타협이 필요했다. 군악대는 라 마르세예즈(프랑스 국가)를 행사의 시작과 끝에 두 번 연주했으며, 현장에 설치된 전광판으로 희생자들의 생전 사진이 지나가고, 이들의 이름과 성, 그리고 나이가 호명되었다. 희생자들의 사진이 전광판에 흘러나오는 것을 거부한 일부 유족들을 위해 정원에도 이들의 사진이 놓였다. 프랑스 올랑드 대통령은 추모식 연설을 통해 «이들은 삶의 행복을 구현한 사람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장에서 목숨을 잃었다. (...) 이들은 프랑스의 청춘이었다. 문화를 사랑하는 자유로운 사람들의 청춘이었다. (...) 11월 13일 테러는 처음으로 세상의 끔찍함에 눈떴을 뿐 아니라 그것에 마주해야하는 오늘의 청년들에게 결코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 프랑스는 이런 추악한 범죄들을 일으키는 광신도 군대를 척결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할 것이다. (...) 그러나 프랑스는, 희생자들이 사랑했던 그 모습 그대로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추모식은 정부 관계자, 주요 공직자, 대사, 국회의원 및 2,000 여명의 참석자로 붐볐다. 참석자들의 절반 이상이 유가족이거나 부상자들의 가족이었으며, 사건 현장에서 목숨을 건진 사람들도 있었다.
일부 유가족 국가 추모일 보이콧
그러나 모든 유가족들이 이러한 추모식을 반긴 것은 아니었다. 일부 유가족은 공공연하게 이번 추모식에 참여하지 않겠노라며 거부의 입장을 밝혔다. 바타클랑 공연장에서 목숨을 잃은 프랑수아 자비에 프레보스트 (François-Xavier Prévost)의 누이인 엠마뉴엘 프레보스트(Emmanuelle Prévost)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대통령님, 정치인 분들 (...), 당신들이 내민 손과 경의를 우리는 원하지 않습니다.»라며, 프랑스 정부가 «이번 사태의 책임 당사자»라며 비판했다.
또한 «프랑스에서는 지난 1월 7일부터 9일까지 테러사건이 발생해서 17명의 희생자가 발생했었다. 그 사건 이후로 어떤 해결책도 취하지 않았다. 법안은 통과되었지만, 법안의 적용에 관한 어떠한 법령도 발표되지 않았다. 열 달이 지나고, 똑같은 사람들이 같은 짓을 다시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라며 «프랑스에서는 테러리스트 연계 조직과 연락을 유지하는 것이 가능할 뿐 아니라, 시리아를 자유롭게 오갈 수 있다. 그것을 결코 이해할 수 없다.»고 강력하게 입장을 밝혔다. 또한 이번 테러리스트들중에는 2006년에 살인을 저지르고, 2008년에는 유죄 판결을 받고, 2013년에 석방되었다는 것을 지적했다.
희생자였던 오렐리 드페레티(Aurélie de Peretti)의 누이 또한 «지난 1월 7일 사건 이후 비상사태에 돌입하며, 최고 수준의 경계경보시스템(Vigipirate)을 공포했으면서, 어떻게 11월 13일의 비극이 버젓이 준비되는 것을 밝혀내지 못했는가?» 의문을 품었다. 동시에 «도시 곳곳에 폐쇄회로를 설치하고, 온갖 문화 공간에서 보안 시스템을 강화하는 등 파리의 빅데이터 정책에 관해 몇 번이나 의문을 품었던가?» 라며, «이제는 정말로 그것이 필요한 때»라며, 치안 개선을 촉구했다.
이렇듯 일부 보이콧의 움직임이 있었으나, 앵발리드 바깥에서는 추모의 물결이 끊이지 않았다. 파리 시내 곳곳의 까페는 물론, 중심가의 대형 건물 유리창마다 프랑스 국기가 걸려있었고, 반테러 정서가 확산되는 가운데 추모의 분위기는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파리광장 / 김수빈, foxy252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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